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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3일 / 지도자가 명심할 세 가지 교훈
민수기 20:1-13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8, 10-12).  우리는 선생연 한다든지 지도자연 해선 안 되겠지만 이 세상에는 선생이 없을 수가 없고 지도자가 없을 수 없습니다.  믿은지 오래되면 누구든지 새로 믿기 시작하는 사람에겐 선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는 다질수록 안전하고 기본은 반복할수록 은혜롭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 교인 모두 새가족 교사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예수님뿐이지만 세상에서는 임시로 부분적으로 그분의 역할을 대행하는 지도자가 없을 수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왕, 선지자, 사도들이 지도자였고, 오늘날 목사, 장로, 모든 직분자들이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지도자 자신은 어디까지나 주님께 대한 봉사자, 백성에 대한 봉사자로 자처하고 시종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로 불림을 받지 못합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이 유별했습니다.  그래서 동족이 학대받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그 학대자를 돌로 쳐죽이고 그 일로 인해 미디안으로 도망가 40년을 숨어지냈지만 그의 가슴은 절치부심, 몽매불망 민족 해방에 대한 꿈이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본 떨기나무에 붙었으나 타지 아니하는 불꽃은 마치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친숙한 광경이었습니다.  80세 노인에게 붙었던 거룩한 여호와의 불꽃,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열심이 유별한 타고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신자의 유일한 지도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하는 사람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진짜 신자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수고는 즐거움이요 보람입니다.  지도자에게는 휴식이 없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40년간 죽을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했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했습니다(신 34:7).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갈렙도 나이 85세였지만 아낙 사람 중 가장 큰 사람이 살았던 기럇 아르바를 내게 달라고 외쳤습니다.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나를 보내던 그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 14:11-12).  노익장 신앙의 모델로서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갈렙(수 14:14)은 필경 기럇 아르바를 점령하고 헤브론 성을 창설합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일터였습니다.  늙어도 결실하는 그에게 있어 일을 뺏기는 것보다 큰 슬픔은 없었습니다.  그는 만족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 기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우리 교회 고 박종탁, 박영훈 장로님이 꼭 그런 분이셨습니다.

   엘리야는 언제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 유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별한  열심이 온 이스라엘에 남은 최후의 선지자로 자임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호렙 산에서 그에게 임합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9-10) 오 주님, 나는 이스라엘의 최후의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는 분이십니다(사 59:17).  여호와의 열심이 이 모든 일을 이루고야 맙니다(왕하 19:31).  여호와의 열심의 불이 붙은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나는 나의 마음에 붙은 이 불을 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호와를 떠날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많이 물러가고 함께 다니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6-69) 당신은 내 인생의 종착역입니다. 당신에게서 영생을 얻었는데 우리가 또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우리가 사모할 이름은 당신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지도자를 높이시고 영예롭게 하십니다.  아끼시고 귀중히 여기십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까 말하기 좋아 지도자의 도덕성, 도덕성 운운하지만 이 세상에 깨끗하고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세도 개인적으로 부덕이 많았습니다.  젊을 때 홧김에 사람을 죽였는가 하면 상처한 다음 이스라엘 여자에게 장가들지 아니하고 부득부득 이방의 검은 피부 구스 여자에게 장가듭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호를 존중하셨지만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모세를 탄핵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틀린 말이 아니죠.  그들의 비방을 하나님도 듣고 모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의 비방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냈습니다.

   지도자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람들의 비난을 견뎌내는 것은 무척 곤혹스런 일입니다.  그렇지만 미디안 광야 40년의 연단을 통해 자신을 선택하시고 지도자로 부르신 하나님께 자신의 삶 전부를 드렸기 때문에 모세는 언제까지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참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자 배척의 우두머리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눈과 같았습니다(민 14:10).  하나님께서 당신이 세우신 지도자를 아껴주시고 높여주신 것입니다.  민 16장에는 더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의 유명한 족장 250인이 당을 지어 모세를 거스려 일어났지요.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좋게 말하면 교회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신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발명합니다.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 직분을 구하느냐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말미암아 알리라”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히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했습니다(민 16:28-33).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두 죄인이며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따져보면 다 자기 이론이 있고 핑계 없는 무덤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로 지도자의 위치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기호와 의지에 따라 그들을 타도하려고 했습니다.  그 자세와 정신이 나빴던 것입니다.  모세나 고라 당이나 미리암이나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면 병듭니다.  놓으면 죽습니다.  다른 말이 더 필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의 권위를 세워주십니다.  모세를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권위가 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모세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꼭 모세가 옳고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죽음도 얼마나 존귀하게 하셨는지 하나님이 직접 묻으심으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찾지 못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엘리야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털 사람이요 불의 사자였는데 마침내 불수레를 타고(왕하 2:11) 승천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높이시고 영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지도자가 하나님의 손에 끊김을 받고 매를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온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무릎과 인내로 이끌어온 기도와 온유의 사람 모세를 하나님이 약속의 땅 가나안 문턱에서 막아서신 것입니다.  이때 받은 좌절이 얼마나 컸으면 평생 원망을 몰랐던 그도 원망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원망했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신 1:37)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원망하는 백성들과 동일하게 취급했을 때 모세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가 지도자로서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와 같은 천추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여호와의 지시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을 모아 그들 앞에서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말하면 반석이 물을 내어 회중과 짐승이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날따라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그들을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겠다’고 외치면서 그의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말로 명하라 했지 지팡이로 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한가지 과오로 인해 모세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천추의 회한을 남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가 간과해선 안될 세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 한 개인의 과실은 그 개인에게서 그치지만 공직자, 지도자의 과실은 무수한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묵과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망령되게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행동해도 아무 징책이 없다면 오고 오는 지도자가 자기 기분이나 감정대로 망령되이 행하고  격정 따라 함부로 말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발자국은 다음 세대에게 전례가 되고 불문율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아끼듯이 당신의 백성도 아끼십니다.  하나님은 단호히 당신의 역사 속에서 그의 행위를 정죄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백성들의 원망과 비방에서 건져주었지만 이번에는 네가 죽어주어야 하겠다고 엄격하게 결정하신 것입니다.

   둘째, 참된 지도자는 모름지기 말로 설득해야지 지팡이로 쳐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은 부딪치며 녹아서 맛을 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양보하고 희생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신자는 세상의 목탁입니다.  목탁은 세상 사람을 가르치고 바로 이끌만한 사람이나 기관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비록 백성들이 당치도 않는 원망을 해도 분노를 터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룬 적이 없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라”(딤후 2:24-25).  모세는 화가 날 때마다 기도로써 잘 극복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누적된 상처 때문인지 그만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지도자는 말로 구타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교회의 누구누구는 부분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함부로 정죄해선 안 됩니다.  

   모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 총회를 향하여 ‘반역한 너희여’라고 망령되이 이스라엘 백성 전부를 모욕했습니다(시 106:33).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이스라엘 전부보다 위대하지 못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구약교회의 사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감히 이스라엘 전체를 모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과 행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너는 틀렸고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 교회를 섬겨야 되지 욕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야지 헐뜯어선 안 됩니다.  회중을 치지 말고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함부로 시벌하고 권징 좋아하는 교회치고 시험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쉽게 정죄하기 전에 더 많이 대화하고  기다리고 권면해야 합니다.

   셋째, 지도자는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 해도 자기의 이름에 집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어디까지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림으로 끝내야지 자기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선 안 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지만(민 12:3) 그도 교만의 덫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 그의 입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즉각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40년간 봉사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4천 년간이나 빛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결코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십니다(사 42:8, 48:11).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자기 이름을 드러내므로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덫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전체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한 사건이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전부에 대하여 잠시라도 무시한 것은 용서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지도자의 업적이나 영광은 죽은 후에나, 적어도 그 자리에서 물러난 한참 후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 당대에 드러내려고 조급해선 안 됩니다.  지도자, 얼마나 귀한 이름이며 은혜입니까?  이 땅과 천국은 온통 지도자의 세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의 과오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며 지도자의 길을 걷고, 또 지도자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딤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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