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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 큰 죄과에서 벗어나는 길
시편 19:7-14

   모든 죄는 큰 죄입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다른 죄보다 더 큽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지만, 어떤 죄는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의도적으로 배척합니다.  모든 죄악이 우리를 정죄한다고 해서, 크고 작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든 죄악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만 어떤 죄악은 다른 죄악보다 그 죄질이 더 나쁘고, 배나 더 악독한 것들이 있습니다.  은혜받은 다윗은 드러난 죄, 누구나 아는 죄가 아니라 숨은 죄, 드러나지 아니한 내면의 죄에 대하여 염려하고 회개합니다.  “여호와여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것이 바리새인의 경건과 참된 경건의 차이입니다.  바리새인은 외모를 보고 내면을 살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은 세리를 책망하면서 자신에게는 책망할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봅니다.  그의 마음 구석구석과 마음의 상태를 살핍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입니까?  허물이란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저지른 실수를 말합니다.  뻔히 알면서 짓는 죄가 있고, 알지 못하여 지은 죄가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짓는 죄가 있고, 전혀 의식이 없이 짓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죄들을 보고는 탄식합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 38:4).  예레미야 선지자도 고백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빛을 받고서 우리의 죄를 발견해 갑시다.  우리 속에는 내가 알고 고백할 수 있는 죄 외에도 수없이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죄악들이 내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는 죄는 기껏해야 농부가 그의 창고에 모든 열매를 쌓아 두고서 견본만 시장으로 가져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보고 감지할 수 있는 죄를 숨겨진 죄와 비교해 본다면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George Bernard Shaw(1856-1950)가 말했습니다.  ‘나도 나를 알고 하나님도 나를 아신다. 나는 나를 일부분만 알 뿐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온전히 아신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한다고 해도 자기 지은 죄를 다 고백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온전히 회개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다 보상하고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도 죄 용서받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고해성사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비극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도 비극이고, 이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비극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귀한 복음이 있습니다.  은혜로운 도피성이 있고 시은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양심의 책을 들여다보면서 지은 죄에 대하여 마음으로 슬퍼하고 참회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선다면 우리 마음의 진정한 의도와 성향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할 때마다 우리의 많은 실수와 죄를 모두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와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경건한 성도는 공공연한 죄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에서도 씻김을 받기 원합니다.  다윗이 말하는 죄는 밖의 죄가 아니라 집 안의 죄며, 내면의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짓는 죄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짓는 죄입니다.  리브가는 외국인의 땅에 살면서 외부로부터 오는 불편으로 인하여 불안해하거나 평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집 안에 있는 문제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에서가 데려온 헷 족속의 딸로 인해서 피곤하고 지쳤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외부에 존재하는 죄와 내면에 숨어 잠재하고 있는 죄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된 성도는 대문 앞만 청소할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방 구석구석을 쓸고 청소해야 합니다.  우리는 밖에 드러난 죄만 깨끗이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속에 숨어있고 내면의 기질에 담겨있는 비밀스런 죄들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짓는 죄의 전부를 볼 수 없습니다.  가장 위험한 죄는 영혼에서 발생합니다.  죄란 본질적으로 숨은 죄이며 오직 하나님과 양심만이 그것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 죄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행할 당시에는 죄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결과에서 보면 죄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내부에는 사탄과 동조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치 숨어있는 고정간첩처럼, 사탄이 문을 두드리면 곧 문을 열어주고 그를 영접합니다.  우리 마음은 지극히 작은 유혹에도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타락한 심성이 발동하고 끓어올라서 우리의 행동과 말에 불결한 오물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알지 못하는 중에 지은 죄를 위해서도 속죄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2).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분의 자비하심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여호와여 당신은 내 속에 비밀스럽게 감춰둔 잘못도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내 모든 허물과 잘못을 바라본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오니 내 양심으로도 깨달을 수 없는 죄악들을 찾아내시고 속죄하는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소서”

   우리는 우리 안에 비밀스럽게 숨어있는 죄악을 심각하게 잡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명적인 죄를 짓게 됩니다.  다윗은 죄의 속임수를 잘 알았기에 철저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숨어있는 죄와 작은 죄에서 시작하여 더 엄청나고 지독한 죄를 대항하여 기도합니다.  엄청난 죄도 작은 죄에서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하소서”  고의로 짓는 죄는 모든 죄악 중에서 가장 나쁘고 주된 죄악입니다.  율법에서도 모든 죄가 용서받았지만 고의로 범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민 15:30-31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신약 히 10:26-29에서도 경고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고의로 범하는 죄는 알지 못하여 지은 죄가 아닙니다.  연약하여 지은 죄도 아닙니다.  의도를 갖고 지은 죄입니다.  물론 사람이 짓는 죄에는 부분적으로 무지함이나 연약함이 섞여 있지만 고의로 범한 죄는 의지로부터 죄를 짓습니다.  자신의 양심이나 빛이나 지식을 거슬려 고의적으로 교만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의로 범한 죄는 성령을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매우 유사한 죄입니다.  은밀한 죄는 곧 고의로 범한 죄로 발전합니다.  다윗의 간음죄는 연약해서 지은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살인죄는 고의로 범한 죄였습니다.  진실되고 겸손한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억제하지 않으면 가장 악한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그의 마음을 통제해야 할 만큼 자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능력으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과 몸이 곧 파멸에 이릅니다.  우리가 깨어있다고 해서 우리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어주셔야 합니다.  고의로 범하는 죄의 근처에까지 가본 다윗처럼 우리도 나의 마음과 의지와 애정을 지켜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3절).  

   큰 죄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사함받지 못할 죄에 대한 생각으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는 또다시 고의로 범하는 죄에 떨어질까 두려워했습니다.  고의로 범하는 죄에 머물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성경은 고의로 범하는 죄를 지은 대표적인 인물을 히 12:16-17에 소개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는 음행하였습니다.  음행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보다 세상 쾌락과 명예와 재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망령된 자였습니다.  잠언 21:24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고 했고, 제3계명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신 5:11)고 말씀했습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무례하고 교만한 행위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교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교만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중에서 여호와를 모독하며 저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 24:13-16).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조심하며 행해야 합니다.  혈기로 함부로 말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해선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 잠잠할지니라(합 2:20)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거짓 종교, 사이비 기독교를 직접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손쓸 것  없이 지옥 불로 떨어집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마침내 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축복의 기업을 멸시하였습니다.  히 2:1-3에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므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위치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천국 시민권을 중하게 여기십시오.  교회 직분을 예사로 여기지 마십시오.  성도의 신분과 직분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금생과 내생에 복이 있습니다.  고의로 범하는 죄는 첫째, 우상숭배의 죄에서 둘째, 망령된 행위에서 셋째, 거룩하신 기업을 멸시하는 사상에 자리잡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6장 초반부에서 고의로 범하는 죄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합니다.  중요한 말씀은 9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그렇게 말하고선 10절에서 이방인 가운데서 신앙생활에 분투하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고 칭찬합니다.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보시고 사랑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한없이 용서하십니다.  한번 용서하시면 끝까지 용서하십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십니다.  다윗처럼 혹 고범죄를 지어도 용서하십니다.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고의로 범한 죄 아래 팔렸다 하더라도 용서하십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주님의 희생을 힘입어 고의로 범한 죄도 사함 받습니다.  이런 죄를 행한 죄인들도 정결함을 입습니다.  다윗이 14절에서 기도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구속자는 죄를 깨끗케 속량해 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교만으로 행한 죄, 완악한 죄, 위험천만한 고의로 범하는 죄, 반역죄까지라도 사해 주실 분은 여호와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무수한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그분께, 모든 죄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깔끔하게 기꺼이 용서하시는 그분께 계속 기도합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기도 자체를 하나의 제사로 인식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한 나는 큰 죄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에 깨어있는 한 나는 큰 죄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윗의 확신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확신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큰 죄과에서 벗어나는 길인 줄 믿읍시다.  우리가 연면하게 기도에 게으르지 않고 깨어있는 것이 큰 죄과에서 벗어나는 길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훼방하지 않고, 사망에 이르는 죄에 빠지지 않는 길은 늘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붙들림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이 평범한 두 가지 습관이 큰 죄과에서 벗어나는 비결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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