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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1일 /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하랴
갈라디아서 1:10  

   John Ruskin 박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자기 자신 또는 자기 내부의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음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내부에 무엇이 있다고 가정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기 내부의 이념이 깨어질 때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올란도, 댈러웨이 부인’을 쓴 Verginia Wolf도, ‘바다와 노인,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쓴 E.헤밍웨이도 자살했습니다.  현대 인식론은 첫째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있어서의 본질적 실체의 상실, 둘째 인간 상호간 이해의 불가능성, 셋째 실제와 환상의 혼동에 대한 무서운 악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사실들이 각각 하나의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눅 18장에 나오는 부자 관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부자였고 세상 지위를 가졌습니다.  돈과 명예 그것은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영생이 없었습니다.  ‘내게 영생이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인데’ 그의 행복은 영생으로 완성될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넙죽 엎드렸습니다.  ‘선생이여 내게 영생을 주시옵소서’  

   영생, 그것만 내가 소유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그가 영생의 필요를 감지한 것은 대단한 발견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영생을 사모하고 있습니다(전 3:11).  그러나 그는 그 영생이 어디서 오는지를 몰랐습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인지, 선을 행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공포에 눌려 살았습니다.  내게 영생이 없으니 어느 순간 내 재물, 내 명예가 날아갈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웠습니다.  돈이 주체인지, 자신이 주체인지 혼동이 왔습니다.  그는 영생을 바라기는 했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와 환상의 혼동 때문에 가위눌려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공포를 더욱 증가시켰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2절).  참 골치가 아픕니다.  돈을 다 버리고 난 다음 영생을 얻지 못하면 나는 완전한 거지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내게 있는 것은 돈 밖에 없는데 돈까지 사라지고 만다면 난 뭘 믿고 산다지”

   여기에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돈의 가치는 나누어 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누어 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선을 행한다고 천당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천당에 간다면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둘째, 그보다 중요한 교훈은 주님을 믿고 따라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그가 누굽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나의 의를 위해 부활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은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주체와 객체의 혼동이 사라집니다.  소유와 욕심의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실제와 환상의 공포가 사라집니다.  우상숭배가 없어지고 자기집착에서 해방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생은 사람이 소유하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생은 아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분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며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영생은 우리의 감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속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딤후 3:19)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3-4)”  부자 관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행한 것, 그가 나누어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선을 행해야 하늘에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나누어 주어야 하늘에 보화가 있습니다.  그는 인식론의 혼란에 빠졌습니다.  공포에 눌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영생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분을 떠나면 영생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해도 그분을 떠나면 지옥밖에 없습니다.  현대 인식론의 공포에 눌린 그에게는 심한 근심 밖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사실상 모든 소유를 버리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든지 언약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했습니다.  자비의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조카 롯이 소유와 관계의 혼란에 빠졌을 때 그는 관계를 위해 소유를 포기했습니다.  그가 소유를 포기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천하 만민에게 복이 될지라(창 12:2)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영히 이르리라(13:14-15)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3:17)”  현대적으로 말하면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는다는 약속입니다.  소유를 위해 관계를 등한히 한 롯은 소알 성까지 잃어버렸지만 관계를 위해 소유를 적절히 처리한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자손도 얻고 땅도 얻었습니다.  기도하던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 절정의 사건은 창 22장의 시험일 것입니다.  그는 관계를 위해 소유를 철저히 버렸습니다.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림으로써 내재했던 부활 신앙을 다시 확정했던 것입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롬 4:17)심을 진정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되 전심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진정으로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께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였습니다.  제단이 있는 곳, 교회와 예배가 있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니라 나의 이름은 여호와 이레니라”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지어 약속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와 아브라함은 믿는 사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 사이에 영원한 생명의 언약이 있고, 우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4-1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으로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당신 삶의 절정이 뭐냐’고 물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친구였다오. 내가 그분의 기쁨을 위해 산 것이었소’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롬 8:3).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십니다(히 4:15).  마귀는 그가 배고팠을 때 첫째, 빵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빵 문제보다 더 급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먹고 살아야 신앙도 하고 개혁도 할 것 아닌가, 구원은 구호정책에 있고 물자공급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대답하셨지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신 8:3).  말씀 순종이 나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떡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서 얻는다는 것입니다.  떡이 있고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둘째, 온 세상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나와 타협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 영생을 누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그들의 숭배를 받으면 행복스럽게 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들에게 영생을 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속지 않고 한 마디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 6:13, 마 4:10).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영광은 지나가지만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F.B.Meyer 박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이 사탄에 절하여 성공하는 것보다 낫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의 성공이 영원한 성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분만이 성공했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장악하셨습니다.  그분의 권력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하여 자기 소유를 버리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분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권세와 나라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7).  이 세상에 진짜 성공한 사람은 신자입니다.  진짜 승리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여호와를 믿고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마귀는 셋째, 이적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적으로 세우라고 유혹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까?  기적과 능력으로 영생을 만들 수 있습니까?  과학과 물질로 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다만 그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켜 행하라”(신 6:16-17, 마 4:7).  영생은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교제입니다.  그분에게 복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몸으로 그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중생 없이는 영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 영생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권세도 피조물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영생과 구원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존재처럼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영존하신 것처럼 믿는 자와의 관계도 영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함께 영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처음 믿을 때는 구원받기 위해서 믿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합니다.  다분히 기복적이고 은사 중심적입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자라면 목적이 바뀝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서 살게 됩니다.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적 동기가 순수한 사랑의 동기로 바뀝니다.  영생은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의 특징은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오직 사랑을 인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되었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사람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삽니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기에 절망도 실망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사랑하는 자의 나타남보다 더한 기쁨은 없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그래서 우리는 다툼도 시비도 없이 서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보내신 자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함께 살게 된 자들을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 사랑은 예수 사랑의 강력한 표현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면 그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행위를 통하여 우리는 자손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주의 뜰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여호와의 성전에 거하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  주님은 자기를 섬기는 자의 얼굴을 괄시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봉사는 반드시 우리 자손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읍시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숭고한 목적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예배를 사랑하고 주일을 사랑합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기도하며 전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입니다.  바울 사도가 권면합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출처가 어딥니까?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깨끗한 양심, 믿음의 비밀, 모두가 사랑을 수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영생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밀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영생의 특징을 붙들고 신앙생활합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거짓 없이 이웃을 사랑합시다.  자손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교회를 사랑합시다.  맏아들 탕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전도합시다.  전도사랑방에 참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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