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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 연합찬양에의 요청
시편 34:3

   성도가 연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 충만한 찬양인도자가 찬양을 인도할 때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진정한 찬양인도자가 주님 자신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시 22:22에 다윗이 노래합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기서 나는 다윗이기 이전에 예수님 자신입니다.  히 2:11-12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예수님만이 온전한 찬양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영광의 찬송을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찬송을 인도하시고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선명하게 기록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또 하나는 내가 마음이 지쳐서 찬송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상하여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그래서 마음이 무너져 여호와께 적절한 영광을 돌릴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가까운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찬양에의 동참을 요청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높임을 받아야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명성은 사람들 가운데서 더욱 커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에 의하면 다윗은 환난 중에 휩싸인 400명 개척 교인들을 데리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목사의 입장과 같습니다.  그는 스스로 무능력하고 작다고 느끼면서 이웃 성도들에게 나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의 도움과 협력을 겸비하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얼마나 겸손하며 얼마나 은혜로운 태도입니까?

   찬양하는 의무와 특권을 다윗 왕처럼 멋지게 드러낸 분은 드뭅니다.  그는 자신이 찬양할 수 없을 때라도 찬양해야 하는 의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자각하며 낙심하고 있을 때라도 찬양할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야말로 찬양에 살고 찬양에 죽는 진정한 성도였습니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의 손길 아래 피신했을 때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일부러 미친 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하들에게 들통이 날 즈음에 아둘람 굴로 도망합니다(삼상 24:10-22:2).  그를 따라서 그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안, 그리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그와 함께하였습니다.  잘 하려다가 빚졌지만 빚진 자는 힘이 없습니다.  사울 왕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한 많은 동포이긴 하지만 건강치가 못합니다.  이런 400명을 거느린 왕, 거지 대장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찬송할 것을 요청합니다.  신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라도 찬송만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어도 찬송할 수 있는 은혜 만은 있다고 늘 주장합시다.  우리 주님도 지상에 계셨을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늘 자신의 내적 세계가 찬송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예수님은 죄인들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고 슬퍼하셨지만 늘 슬퍼하신 것은 아닙니다(찬 549장 2절).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항상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눅 10:21).  그러시던 분이 십자가 고난을 눈앞에 두고서는 마음이 심히 불안하여 고민하고 슬퍼하사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해서 곯아떨어졌지만 주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눅 22:44).

   주님이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했고(눅 22:43) 주님은 다시 찬송을 회복했습니다.  원래의 모습대로 제자들의 찬양인도자로 되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갔던 것입니다(막 14:26).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새로운 힘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치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처럼 우리 눈앞에 나타납니다.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능력이 임합니다.  거룩한 외경심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슬퍼하고 고통하고 신음하시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내면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기쁨과 즐거움과 환희가 넘쳤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 내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은 찬송하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며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면의 찬양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영혼의 찬양을 되찾고 힘 있게 하기 위해서 믿음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무가치를 자각하여 낙심하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찬양보다 귀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성령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약한 가운데서 다시 강해질 줄 알았습니다.  곤경에 처한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자신을 비울 줄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줄 알았습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본문)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시 33:3)”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연합찬양에의 요청입니다.  성도가 무리 지어드리는 예배는 새 생명의 자연스런 본성들 중 하나의 표출입니다.  하늘에서의 예배는 모두 집단적 성격을 띱니다.  땅에서 연합하여 드려지는 예배로 충만한 곳은 마치 하늘과 같습니다.  성도들이 연합하여 드려지는 찬양 속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권능이 있습니다.  다윗은 피난민 400명을 이끌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양 가운데 진군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연합찬양 속에 임재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두려움과 환난에서 구원해 주시고 그들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을 진치고 건져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가 연합하여 찬양하는 곳을 찾으십시오.  오후찬양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누가 찬양하자고 할 때 거절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나와 함께 여호와를 찬양할 수 없겠오?”하며 부탁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연합찬양대의 연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첫째, 우리의 모든 찬양은 새 노래가 돼야 합니다.  예배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큰일입니다.  오래되고 낡은 찬양만을 드리지 말고 모든 찬양 가운데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은총을 받으며, 우리 주님의 사역과 말씀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노래합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3).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19-23).  성도 욥은 항상 신선한 생명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새로워진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욥 29:20).  할렐루야!

   둘째, 우리는 그분을 노래해야 합니다.  노래란 자연의 음악입니다.  산들이 노래하고(사 55:21) 골짜기들이 노래합니다(시 65:13).  숲의 나무들이 노래합니다(대상 16:33).  공중은 새들의 음악실이며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음악적 운율에 맞추어 지저귑니다.  만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변덕 없이 그분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노래란 성도들의 음악입니다.  성도들은 평소에 노래하고 큰 곤경과 풍요 가운데서 큰 구원과 큰 기쁨을 노래합니다.  주의 날과 절기의 날들에 노래합니다.  성도들은 종일토록 주를 마음으로 삶으로 노래합니다(시 36:28).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주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주께 순종하는 것이 주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전능자 여호와께 기쁨과 찬양을 표현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성품은 우리의 노래와 운율이 되기에 너무나 적합합니다.

   노래란 천사들의 음악입니다.  욥 38:7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다”고 했습니다.  새벽 별들은 Pineda의 말처럼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천사의 군대인 천군이 예수님의 탄생을 선포하러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도 찬송하며 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눅 2:13).  하늘에는 많은 천사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가득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분과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께 할렐루야로 노래합니다(계 5:11).  노래란 하늘의 음악입니다.  영광스런 성도들과 천사들이 찬양의 소리를 드높이며 복된 상황 가운데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룹니다.  이 땅에서 시편을 노래했던 성도들이 이제 보다 큰 음성으로 할렐루야를 노래합니다.  여기서는 나른한 마음과 더듬거리는 혀로 온전히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기쁨을 그날에는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며 그들의 즐거운 찬양을 훼방할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셋째, 우리는 즐거운 소리로 노래해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드려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예배에 있어서 점잖은 속삭임은 오히려 악평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말을 듣지 못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큰 기쁨은 요란하게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시 89:15입니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사람들이 자신의 왕을 보면 환호성을 지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윗의 자손 예수께 호산나를 크게 외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그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선생이여 너무 시끄럽지 않소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힐난하자 예수님이 대답하셨지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38-40).

   넷째, 우리는 아름답게 연주해야 합니다.  무성의하게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비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지닌 최선의 것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회중과 더불어 곡조를 맞출 수 있도록,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찬송을 부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가장 감미로운 음률과 가장 감미로운 음성 그리고 가장 감미로운 가사 내용으로 찬미를 드려도 부족할 뿐입니다.  그분께 늘어진 리듬으로 찬양을 올리지 맙시다.  거치른 음색을 내거나 불협화음을 발하지 맙시다(C. H. S).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올바로 찬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찬양처럼 시나브로 최고의 최선을 다하고(John Trapp) 추수찬양처럼 시시때때로 연합찬양을 요청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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