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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 여성의 위치와 책임
베드로전서 3:1-6

   20세기에 벌써 ‘다가오는 세기는 여성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교회는 가정 천국을 만들기 위한 기도와 노력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받고 있습니다.  가정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아내와 남편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관계는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생각하면 굉장히 복잡합니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영적 진보보다 훨씬 많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가정 살림은 분명히 옛날 어느 시대보다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T.V, 냉장고, 세탁기, 가전제품이 즐비하고 맨션, 빌라 등 거주환경도 정말 안락해졌지만 그 안에 사는 가족의 심령은 이전보다 더 혹독한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단절, 애정의 고갈, 죄악의 범람 등, 불신세계는 하나님도, 믿음도, 성경도 없으므로 차치하고라도 기독교 정신으로 출발한 구미에서도 가정은 쉽게 파탄에 이르고 그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식은 밥 먹듯이 해치우는 이혼, 차를 갈아타듯이 성행하는 부정, 인류의 기본단위인 가정의 파괴는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만 합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볼 때 정상적일까요?  부조리와 미해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미움과 원망과 시비가 사랑과 이해와 용서보다 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가정의 비극적인 현상에 대해 누가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겠습니까?  저는 성경의 일반적인 교훈을 통하여 남편보다는 아내에게 가정 재건의 중요한 사명이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죄의 종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여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분명히 여성 미리암이 아니고 남성 모세였지만 현대의 비참한 가정생활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가정 천국을 건설할 지도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독일 시성 괴테는 그의 작품 Faust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정생활에 대하여 교훈하실 때는 언제나 아내로부터 시작하고 더 요긴하고 많은 교훈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엡 5:22-, 골 3:18-, 오늘 본문 등).  이것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여성의 위치가 남성의 위치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가정에 대한 기독교 여성의 ABC를 말씀드리겠습니다.  ABC란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지혜를 말합니다.  A는 여성의 위치에 대한 성경적 자각이요, B는 여성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요, C는 여성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각성입니다.  

   첫째,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가정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과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관계의 정상화 없이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부부관계의 올바른 이해와 발전이 모든 가정 분위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남성과 여성은 상호간에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도 아니고, 남성보다 열등하지도 않습니다.  중국처럼 여자가 합법적으로 더 좋은 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제 공부도 정치도 여자가 훨씬 더 잘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1:11-12에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느니라”고 말씀하므로 남과 여의 본질적 평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적,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개인적, 가정적 관계에서는 남과 여의 입장이 다릅니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에 의한 인간 본성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있을 곳에 있어야 아름답지 않습니까?  인간사회를 보십시오.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혼란이 생깁니다.  혼란은 무질서를 가져오고 무질서는 온갖 악덕과 어둠과 파멸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정치학에서 무질서한 국가보다는 차라리 독재국가가 낫다고 말합니다.  유 1:6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위치를 지키지 않는 인격적 존재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언제나 화근(禍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간에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악덕이 발호합니다.  혼돈의 지옥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위치의 문란에서 가정의 무질서라는 무서운 재앙이 발생합니다.  이혼율의 증가, 가정의 불화, 청소년의 타락, 범죄율의 증가 등 이러한 비극과 고민은 우리가 매일 보고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1/4에서 1/2에 이르는 가파른 이혼율의 증가를  보십시오.  무너지는 교실들을 보십시오.

   남성과 여성은 제각기 위치가 다릅니다.  가정에서 각기 제 위치를 지키면 아름다운 조화와  통일성, 행복과 질서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  고전 11:3과 7-9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를 예수 그리스를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본체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영광과 권능이 동일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범사에 아버지께 복종하는 위치에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신 것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인격적으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가정이란 관계 속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범사에 복종하므로 질서와 행복과 조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자의 위치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잠 31:2-3).  둘째,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1-5).  여기 보면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남자는 여자만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복지를 위한 대외적인 일에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는 여자만 섬기고 살 수 있는 팔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성은 이 점에서 남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당신 부속품이요? 나는 이처럼 집에서 힘들고 외로운데 당신은 뭣해요”  불만과 투정을 부리려면 한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의 행복한 부속품으로 자처하시고 남성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쉬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남성의 일에 참여하는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은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니라”(잠 31:30).  둘째,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1-15).  여자들의 착각은 예쁘고 공부 잘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위치는 남편을 내조하며 경외함으로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영국 여왕이라도 남편에게는 ‘당신의 아내 Victoria예요’라고 해야 사랑받는 아내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내부적인 일에, 가정 속에 그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여성의 실패에 대해서 알아보십시다.  여성은 예로부터 어머니로서는 한없이 위대한 존재지만 아내로서는 태초부터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 먼저 남편과 의논해야지요.  그것이 가정적 위치에서 정당한 질서입니다.  그런데 자의로 선악과를 따먹고는 남편까지 먹도록 유혹했습니다.  좁은 소견과 욕망으로 일은 먼저 저지르고 책임은 나뉘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하와의 후예인 여성들은 오늘까지 똑같은 유혹 가운데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수많은 남성을 넘어뜨려 고생시켰고 가정을 파괴시켰습니다.  여성의 무절제로 인하여 남성은 빚더미 위에 올려집니다.  여성의 허영으로 인하여 남성은 사회에서 매장됩니다.  가정의 파괴,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원인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있습니다.  최상의 여자인 사라까지도 하갈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뼈가 마르게 하였습니다(창 21:12).  하갈을 데려오도록 꾀인 그녀가 하갈 때문에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일만 근심에 휩싸이게 만든 것입니다.

   남자는 사실 가정생활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가정은 그의 전문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사의 대부분은 여자가 조절하며 또 조절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자기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없이, 남편의 동의 없이, 권위를 무시하고 행하기 시작하면 가정은 곧 혼돈과 무질서에 빠집니다.  인간의 줄인 사랑과 이해와 평정이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남성은 여성에게서 고향을 느끼고 부드러운 안식과 위로를 찾습니다.  그런데 일시에 남편의 권위를 뭉개버리는 아내의 만용을 보십시오.  아내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질책합니다.  남편의 뜻은 일고의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혼하자고 행패를 부립니다.  잠언의 기록들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1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5:24)”  오늘날 사나운 여성들은 사회에서 시달린 불쌍한 남편들을 가정에서마저 쫓아냅니다.  가정에서 쉬지 못하는 남성은 늘 불안합니다.  정신적 안정을 얻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땅 위에서 가장 학대받는 외롭고 슬픈 군상들입니다.

   셋째, 여성의 책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여성들은 주장합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순종하지요. 자기 역할이나 잘하면서 그러면 밉지나 않지요. 자기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뭐 잘났다고 순종하라, 조용하라 요구가 많습니까?”  그러나 이 항변은 대단히 잔인하고 어리석습니다.  사랑받을 기반을 파괴하면서 사랑받겠다는 이율배반적 행위입니다.  사랑이 억지로 되나요?  일시적인 사랑은 아름다운 외모로 가능한지 모르지만, 영속적인 사랑은 오로지 여성적인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 순종과 정절이 있는 태도에 자리잡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주라고 긍정할 때만 자기만 사랑해 달라는 요구가 합당해지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성도님이시여, 여러분의 남편을 가정에서만이라도 왕 노릇 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불만과 괴로움과 욕심을 남편에게 터뜨리기만 하지 마시고, 더 많이 감사하고 격려하고 칭찬하십시오.  

   남편은 그리스도와 가장 유사한 존재이지만 정작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현대의 경쟁사회는 남자를 무력한 소시민으로 만듭니다.  영웅과 매력적인 남성미는 Screen이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과 함께 인생의 짐을 나누어지고 갈 연약한 그릇에 불과합니다.  남편을 내 인생문제의 해결사로 기대하기 때문에 불만이 쌓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단장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이나 남편 앞에서 진정한 단장이 되지 못합니다.  가장 강력한 단장은 하나님과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사라도 한나도 그 남편을 주라고 불렀습니다(삼상 1:8).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LXX)’라고 부른다고 해서 남편이 하나님 아닌 줄 누가 모릅니까?  ‘그래도 당신은 나의 주인이요 나의 권위자입니다’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최고의 단장은 남편을 주라고 부르며 순복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여성 잡지에 ‘가장 존경하는 남성은?’이란 설문이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케네디’라고 했는데 고려병원의 한 여의사는 ‘자기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돋보이는지요?  그리스도를 순종함으로 높이는 것이 신자의 영광인 것처럼 여성들이 자기 남편을 순복하고 높이는 것이 그 자신에게 영광이 됩니다.  남편이 좀 모자라도 아내가 높여주면 그가 발전합니다.  역사는 남자가 만들지만 그 남자는 여자가 만듭니다.  잠 31:12에 “현숙한 여인은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한다”고 했고,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아내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잠 31:11, 23)고 했습니다.  남편의 출세가 아내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이 미련한 남편 나발의 생명을 건졌고(삼상 25장) 신앙의 여인은 그 신앙을 자식에게 유산합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디모데가 났습니다(딤후 1:5).  특히 가정생활에 대한 습관의 80%는 그 부모를 닮는다고 합니다.  장가가실 분은 장모될 분을 눈여겨보십시오.  외할머니는 남편에게 ‘식은 밥을 드린 적이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남편이 화낼 때는 참았다가 뒤에 얘기해서 안 통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내란 말은 안해에서 나왔는데 그 말은 안에 있는 태양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여성은 가정의 태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으로 충만하여 온 가정에 비칠 때 남편은 달처럼, 자녀들은 별처럼 빛납니다.  그래서 사회와 교회, 학교와 세상에서 즐겁게 반짝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경애하는 여성도님이시여, 하나님 앞에서 가정의 책임, 기독교 가정의 건설이라는 이 막중하고 미묘한 책임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와처럼 오늘도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하시겠습니까?  그리 마시고 오히려 기쁘게 감당하심으로써 진주보다 귀한 값진 존재가 되십시오.  “하나님이시여 내 가정은 내가 책임지겠나이다. 남편을 힘 있게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가장 고귀하고 깊은 책임을 핑계하지 않고 내가 지겠습니다. 나를 도우소서!”  여성 자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성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면 능히 가정 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남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으시면 빛과 사랑이 넘치는 기독교 가정이 여러분을 통해 세워집니다.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전 3:1).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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