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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창세기 16:6-13, 31:36-55

   우리는 지난 몇 해 동안 많은 역사적 변천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똑같은 날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한계를 그어서 분기점을 상정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지난달과 새 달, 지난해와 오는 해, 5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는 시점을 기억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장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믿음이 한 단계 전진하는 데는 신앙의 특별한 시련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고빗길과 분수령을 지나면서 그들의 신앙은 더욱 성숙해지고 균형이 잡혀갔습니다.  창 16장, 21장과 26장, 31장의 사건들은 모두가 분쟁과 오해, 편견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첫째, 창 16장에서 이스라엘 족장 아브라함은 그의 첩 하갈을 쫓아냅니다.  하갈은 쫓겨가면서 자기 할 말을 다 못합니다.  그녀가 비록 이스마엘을 잉태한 다음 그 여주인 사라를 멸시한 죄가 있었지만 그녀 편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을 당한 셈입니다.  여주인의 권유로 첩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씨까지 배었는데 왜 쫓겨가야만 하는지, 그녀의 가슴은 답답하고 멍들고 아팠습니다.  그때 본문에 여호와의 사자로 표현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녀를 위로해 주시고 장래의 비전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수심과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억울함도 풀렸습니다.  섭섭한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 새로운 믿음으로 현실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여성적인 쾌활한 성품을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기와 사라 사이에 계신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태어날 아기까지 관심을 가지시고 그의 삶을 지배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라와 자신과 아들을 예수님께서 온전히 아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미운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감사와 찬송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시간과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려진 역사가 없고 잊혀진 인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두를, 그 모든 상황을 통촉하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엘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나의 눈으로 확인한 하나님, 나의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광야 같은 이 세상을 고통과 절망 중에 방황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따돌림당했고, 광야의 노숙자였습니다. 나는 도망자였고 망명객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나의 하나님이 친히 만나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the God who sees me. 그분이 나의 억울함을 보상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고 그분의 약속은 내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 대한 용기를 얻고 매사에 긍정적인 신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단순히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삶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김형석 교수).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난 이 장소를 기념하여 브엘라해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브엘라해로이, ‘살아 계셔서 나를 지켜보신 자의 우물’을 기억할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쾌활해졌습니다.  즐거워졌습니다.  넓어졌습니다.  그녀는 사실 노예 출신입니다.  노예근성은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기 마련입니다.  조금 치켜주면 그리 좋아할 수 없고 조금 외면하면 그만 토라집니다.  하나밖에 모르고 둘은 모릅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남도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융통성이 없고 유연성이 없습니다.  답답합니다.  게다가 너무 직정적이고 쉽게 안일을 탐하기 때문에 어떤 권위 아래 자신을 둔다는 것을 잘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브엘라해로이에서 엘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그녀의 성질이 바꾸어집니다.  담대해졌고 포용적이 되었습니다.  매사를 이익에 직결시키지 않고 계산을 넘어서 손해 볼 줄도,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은혜 받고 변화되어 여주인 사라에게로 돌아갑니다.  앙심을 품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쁨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여주인 사라에게 복종하며 살려고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다시는 자신의 일로써 아브라함이나 여주인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의 첩, 여종 하갈, 비천한 여인에게 계시되었던 엘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그녀의 가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의 남편 아브라함과 그녀의 이복아들 이삭에게까지 신앙적인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은혜 받게 되면 모두가 은혜를 받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열심히 기도하게 되면 모두가 혜택을 누립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덩어리가 되실지언정, 거치는 돌, 근심을 끼치는 인물이 되지 마십시오.  둘째, 창 21장과 26장을 보면 블레셋 땅 그랄 지방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조금 시간 간격이 있지만 똑같은 사건과 맞닥뜨립니다.  그 지방의 유지 아비멜렉과 우물 파는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그들이 장관들과 더불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찾아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입니다”(채영남 목사의 아들).  아브라함과 이삭은 우물을 늑탈하고 메운 일에 대하여 그들을 젊잖게 책망한 다음 맹세를 세웁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원합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사정 전부를 파악하시는 분이 우리 사이에 계셔서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을 믿읍시다”  이것은 모두가 브엘세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분쟁과 다툼에서 이스라엘 족장들이 취한 태도를 보십시오.  그들은 끝까지 싸우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그 모든 사후 귀결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들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했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약속하고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화해와 평화가 싹텄고 친애함과 우의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분쟁이 일어나면 꼭 끝까지 싸우려고 듭니다.  신사적으로 타협하면 비겁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혈기로 끝까지 다투면 서로가 손해요 같이 망합니다.  때로는 후손들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는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다투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장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그런 지혜를 사용합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그들로 의젓하고 관용스런 태도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평화의 언약을 세운 후에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도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분쟁자 사이에는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중재자가 누군가에 따라서 상황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족장들은 그 분쟁의 조정자로써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을 모셨습니다.  자기가 이기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기기를 소원했습니다.  우리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판단하사 영광 거두시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꼭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사 주의 영광이 들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쟁 중에 계십니까?  마음속에 분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꼭 이기고 유익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내가 틀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용기요, 하나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입니다.  내가 억지로 이겼다고 합시다.  상대방이 억울해서 하나님께 호소하면 내가 벌을 받지 않겠습니까?  영존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녀가 나 때문에 벌을 받아야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족장들은 분쟁 가운데서 자신을 비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했습니다.  분쟁 이전에도 하나님과 함께 계심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했지만 분쟁 이후에는 더욱 하나님과 함께 계심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거래하기 전에도 귀하게 보였지만 거래하고 난 뒤에는 더욱 귀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입니다(갈 4:31).  종의 마음은 율법에 매이고 사람의 말 한 마디에 매이고 자기 기분과 판단에 매입니다.  그러나 자유 있는 아들의 마음은 법에 매이지 않고 은혜에 매입니다.  융통성이 있고 친밀감이 있습니다.  하갈이 노예정신을 가진 채로 어쩔 수 없이 여주인 아래 복종했다고 합시다.  그랬다면 아마 몇 번이나 도망을 쳤을 것이고, 속이 타서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후덕한 신앙의 덕을 끼쳤습니다.  셋째, 오늘 본문 창 31장에서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억울한 처가살이를 했지만 울분을 삭이고 해방감을 누리고 산 까닭은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강력하게 외삼촌께 변명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하나님께서 발명할 수 있도록 리브가의 도둑질을 숨겨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그 누구도 큰소리치고 살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여건을 십분 이용하여 큰소리쳤지만 그 큰소리 속에는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속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나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난처하게 된 라반은 야곱에게 주도권을 뺏긴 채 그의 신앙에 이끌려 미스바 언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함께 예배드리고 서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장의 문제 해결의 특징은 상호간 자신들의 의견 제시로 끝내지 않고 꼭 하나님의 중재와 간섭으로 해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지금 헤어지나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이곳에서의 약속이행을 지켜봐 주시옵소서”  이런 협정 후에 화해와 우정이 회복되고 깊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한 사건에 대한 의견이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쟁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고 그 사건에 임해야 합니다.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 “나도 옳지만 너도 옳을 수 있다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이기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겨야 한다는 것, 우리는 이 상황을 현재의 관점에서만 보지만 하나님은 통 시간상으로 전부를 보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당신과 나, 우리 사이에 계시게 합시다. 우리 위에 계셔서 통치하시고 판단하시게 합시다”  얼마나 멋진 제안이며 결론입니까?  그럴 때 우리는 엄청난 자유함을 누립니다.  넉넉한 여유를 가집니다.  모름지기 자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유연할 뿐아니라 굉장한 능청스러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임하신 권위 아래서 기다립시다.  유쾌한 마음으로 순복합시다.  하나님은 지금 위임된 권위를 통해 판단하시지만 장래에는 직접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조바심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융통성과 관용 때문에 상대방에게 독특한 인상을 주고 복음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저 신자들은 진정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구나 그분의 판단을 기다리고 사는구나”  우리의 주도적인 신앙이 그들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로 이끌어옵니다.  하갈은 여종이었지만 자유 있는 여자의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집안 후손들은 물론이요 동시대를 살았던 친척과 이웃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모심으로 분쟁과 싸움은 더욱 깊은 이해와 우의로 바꾸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해에 어떻게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에게 얼마나 공정하시고 정확하셨습니까?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여러분 자신을
두었을 때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하갈은 위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서 언제나 아브라함과 이삭의 손을 들어주셨고 마침내 야곱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셨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나를 환난 가운데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를 판단하시고 나와 너 사이에 계신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편벽이 없으십니다.  충분히 공정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내면도 아시고, 내게도 나의 후손에게도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나를 자유롭고 너그럽게 만들어 줍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나를 더욱 매력적인 복음신앙의 인격자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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