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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요한복음 4:7-26, 28-30

   우리 교회는 세례식이 있을 때마다 ‘당신을 향한 노래’라는 축복송을 부릅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나님은 당신의 손으로 창조한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영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인(골 1:18) 나사렛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의 한 비천한 여인과 같은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202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강림하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절대적인 평화, 영원한 평강을 수립하셨습니다.  고후 5:19에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했고, 구약 미 5:2-5에서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종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그분을 메시야라고 불렀고, 헬라 사람들은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그분 안에 계셔서 땅 끝까지 임하실 때 가버나움에도 갈릴리에도 오시고, 대한민국 부산에도 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분을 영접합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오늘은 이스라엘 사람이면서도 낯선 이방인처럼 취급받는 사마리아의 한 복잡한 이력의 여자를 찾아오십니다.  중동의 뙤약볕 속을 서너 시간 걸어서 사마리아 수가 성을 찾아 이스라엘 족장 야곱이 판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예의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 곁으로 다가옵니다.  드디어 지상 최고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이 만남의 주도권은 역시 예수님이 쥐고 계십니다.  “여자여 내게 물을 좀 주세요”  내가 목이 마르다는 말은 나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서 나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필요를 익히 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는 이런 공감대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눕니다.  이 여자는 자신을 익명으로 감추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대변해 줍니다.  문제 속에 고민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사는 그 여자의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녀가 안고 있는 첫 번째 고통은 고독입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현대인의 고독을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상실했기 때문에 고독을 느낍니다.  현란한 현대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도둑맞았다는 것입니다.  돈과 쾌락을 위해 인격과 영혼마저 팔아버린 텅빈 로봇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를 내어줄 만한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독을 느낍니다.  생명을 내어주며 사랑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찾아야 고독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아깝지 아니한 대상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위대한 존재지만 자기 정체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인간의 고향은 어딥니까?  그 생명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고향을 상실했을 때, 근원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원천적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가 성 여인이 안고 있는 두 번째 고통은 사랑에 대한 갈증입니다.  사랑에 얼마나 굶주렸으면 여섯 남자를 바꿔가며 의지했겠습니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자기 존재가치기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사람에게서 영원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부터 상대적인 것을 절대시함으로써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사랑은 위로부터 와야합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게로 와야합니다.  상고에,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께로 가야합니다.  사상가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마음속에는 다 이런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은 어떤피조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공백, 텅 빈 곳이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사람이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고, 하나님만이 예수님을 통해서 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  ‘야곱의 샘에서 긷는 물은 마셔도 또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 1:8에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심미가들은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고 식도락가들은 맛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고 곧 시들시들해집니다.  솔로몬 왕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다가 쾌락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사업을 크게 하고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처가 300명이요 첩이 700명이라, 눈에 드는 여자라는 여자는 다 끌어다 놓았습니다.  평생 일천 여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 행복할까요?  

   전 2:11이 대답합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으나 솔로몬은 그의 마음에 있는 욕망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토로합니다.  갈증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늙고 병들고 힘들고 외로울 때,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이 언제까지 여러분을 편들어 줄 것 같습니까?  지켜줄 것 같습니까?  다 떠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꿈을 깨십시오.  사람은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알아야 속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만족합니다.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있을 수 없나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평안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주는 하나님이 만든 공간이라 인간이 메울 재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있는 우주보다 큰 공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메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씀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드디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 곧 영원한 생명과 성령의 은혜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예수님은 문득 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물질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관심을 돌리는 그녀에게 그녀가 안고 있는 세 번째 고통인 죄를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여자여 가서 당신 남편을 불러 오시오”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남자하고 살기는 살아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음을 인식합니다.  그녀는 그 남자들에 대해서 난폭한 여왕벌이었는가 하면, 그녀 자신 또한 난폭한 황제병에 찌들린 남자들의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결혼했다고 도매금으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삶에서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영적 고통의 원인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지 않으면 각기 제 길로 갑니다.  자신이 하나님이고 다른 모든 것은 이용가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살지 않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죄라고 합니다.  각기 자기 기준에 따라 주장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받습니다.  욕심과 정욕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이웃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죄란 사랑의 관점에서 말하면 배신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우리가 배신자, a betrayer입니다.  인생이란 배신의 연속극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막 14:27).  목양이 뭐냐? 배신을 때리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로 어느 지점까지 회복되느냐? 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인이 자기의 죄와 배신을 시인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 내가 압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시 36:6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거대한 산처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하고도 강직한 입법자이신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또는 믿는 자의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희생제물로써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는 사함을 받습니다.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죄에 대한 고백과 함께 역사합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정면으로 주목하십니다.  “여자여 당신에게 말하는 내가 곧 메시야요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만 예배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마리아뿐 아니라 어디서든지 진리와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유대인이 의미가 있고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메시야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이름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복잡한 이름들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협조로 인하여 구원받고 죄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생수를 부으시고 새 생명이 그 영혼 속에 흘러듭니다.  죄가 용서받고 복잡한 과거가 사라집니다.  더 지독한 죄인 ‘자기의 의, 잘난 척, 나는 다르다’는 고집이 지워집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발명품은 지우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지우시는 유일한 지우개, eraser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나도 모르게 속사람이 변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순간에 받고 약속된 축복은 영원히 누립니다.  죄 때문에 오는 갈증은 내 속사람이 새 사람으로 바꾸어짐으로 해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원코자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야 할 사람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음성으로 부르시고, 기적으로 부르십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직접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중에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여인은 더 이상 고독의 갈증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해결되지 않던 죄가 일시에 사함받고, 막혔던 분노와 미움, 슬픔과 한이 사라졌습니다.  사귐이 없어 고독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아들과의 교제로 인하여 만족합니다.  생기와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자 이웃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갑니다.  피하고 숨어다니던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성령의 권능으로 임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행복한 여인으로 거듭났습니다.  후일에 사마리아 전도의 불쏘시개가 되고 사마리아 교회의 징검다리(행 8:4-8)가 된 줄 믿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갈증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볼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형제들을 섬겨볼까? 라는 행복한 고민이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다시금 확신하셨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을 들은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힘차게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상고에, 태초부터 여러분을 사랑하사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나 기쁨과 사랑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행복을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앗시시의 성도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은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누립니다.  또한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진리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고 노래부를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늘 아래 땅 위에 오직 한 길뿐입니다.  부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생명의 진리와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prayer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히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감하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스런 것이 제 속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슬퍼합니다.  그렇지만 상고에, 태초부터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나의 의가 되시기 위해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이 시간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제 마음속에 오셔서 지금부터 천국 갈 때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죄를 씻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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