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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3일 / 우리가 왕의 일을 도웁시다
시편 44:4-8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자의 왕이십니다.  왕이란 직책의 이름입니다.  왕의 직책은 백성을 먹이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왕은 자기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자기 백성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사는 생활이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돕기 위해 사는 삶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분이고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입니다(렘 33:2).  일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일,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 속에, 사역 속에 우리를 불러들이십니다.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을 이 땅 위에 실현하는 그릇으로, 도구로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고전 11:8-9에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 관계의 원상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 진리를 깊이 이해하면 인생의 신비가 풀립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보게 됩니다.  인생이란 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안타깝게 기도하면서 답답하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나님께 수종들며 순종할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왕이시여 나는 당신의 배필이며 돕는 자로 지음을 받았나이다. 나는 당신의 명하시는 바를 행하기 위해 여기 존재하나이다”  우리는 왕이 없는 백성이 아닙니다.  섬길 왕이 계시고 그분은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나의 남편이시고 나의 구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성호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숭고한 사랑과 장엄한 특권에 몸둘 바를 모르는 황송함을 느낍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사람이 왜 결혼합니까?  행복하기 위해섭니다.  행복의 비결은 둘이면서 하나가 되는 데 있습니다.  1+1이 2가 아니고 1이어야 합니다.  알기 쉽게 100+100이 200이 아니라 100이어야 합니다.  둘이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연합의 신비입니다.  내가 왕의 배우자와 돕는 자로서 행복을 누리려면 주님과 내가 둘이면서 하나 되는 연합을 성취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나와 함께 살려면, 나와 연합하여 행복해지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주장은 포기하되 내가 나눠준 삶을 포기하지 말고, 내가 메워준 짐을 지고 끝까지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개성이 강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데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연합의 사랑을 누리며 살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100과 100이 합하여 100이 되려면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서 내가 50도 되고, 0도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싸우다가 볼일 다 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신랑이신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주장이 진리이고 당신의 뜻이 언제나 최고, 최상의 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부드럽게 요구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  주님과 나, 우리 왕과 우리의 관계가 리드미컬하고 원만하면 행복합니다.  복음성가 “구주를 알 때 행복 있네”의 2절에 “거듭난 생에 행복 있네 예수와 나는 하나되어 구원의 사랑 나 얻었네 주는 나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와 나의 연합이 든든하면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연합을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영성은 그렇게 쉽게 강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영성을 점검하시고 강화하실 때마다 그는 큰 고통을 경험하였습니다.  

   창 28장, 루스 땅에서 홀로서기 신앙을 시작했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떼 두 떼나 되는 재산과 아내 넷과 자녀 한 다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창 32장, 얍복 나루터에서 다시 홀로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입니다.  위기가 오고 늙고 병든 날이 오면 우리 모두는 혈혈단신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야곱과 그 사람이 밤새 엎치락뒤치락 밤이 맞도록 씨름했는데 날이 새도록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습니다.  환도뼈가 위골이 된 야곱이 큰 고통 중에서도 그 사람을 놓지 않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드디어 그 사람이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 사람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야곱 영성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야곱은 많은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져 주십니다.  발목을 잡히십니다.  복을 주시고 하나가 되십니다.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 씨름을 통하여 야곱의 영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어떤 위기에도, 어떤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해야 승리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정말 뼛속 깊이 새겨주셨습니다.  그날 밤 이를테면 주의 천사는 야곱의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이럴 때도, 저럴 때도 하나님과 연합하면 원수를 누를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상대방을 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수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공격하고 함께 수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의 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4-6절).  야곱은 뼈가 부러지면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뼈가 부러지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평생 절뚝발이로 살았습니다.  다리를 절 때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요 의지시요 방책임을 기억했습니다.  그의 상처는 은혜로운 상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다가 당한 상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랑이고 훈장입니다.  주를 위해 당한 상처는 면류관이요 상급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도 조상의 상처를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창 32:32).  

   하늘이 사람을 크게 쓰시기 전에 반드시 그를 괴롭힌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귀중히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고 하나님의 교회와 믿음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젊다고 씨름에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늙었다고 싸움에 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늙고 젊고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과 연합하고 왕과 하나가 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소년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나섰기 때문에 대적을 눌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었어도 주를 의지했기 때문에 치러 일어나는 자를 밟았습니다.  야곱은 창 32장 사건 이후 꼭 한 가지 스타일로 살았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참고 인내했습니다.  활이나 칼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켰고 자기의 길을 똑바로 걸어갔습니다.  창 37장 이후 야곱의 약전을 보십시오.  막내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첫아들은 자기의 침소를 더럽혔고 딸 디나는 강간을 당했습니다.  둘째, 셋째아들은 세겜 사람을 죽였고, 온 가족과 함께 도망가야 했습니다.  기근을 당해 죽을 고생도 했습니다.  그 모든 시련의 끝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

   130세가 된 야곱의 신앙을 보십시오.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믿었는데 그 범위가 넓고 정확합니다.  자식보다도 하나님과의 연합을 더 크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브니엘이 됩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그 생명이 보전된 자의 길에는 해가 돋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가는 곳마다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78년에는 기장교회당, 82년에는 삼천포교회당, 2000년에는 송도제일교회당, 2010년에는 고신총회 세계선교센터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다.  옛말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이 남기고 간 것이 무엇입니까?  한 떼 두 떼나 더 되는 재산입니까?  성전입니까?  아닙니다.  왕과 연합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간 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믿음의 사람, 하나님과 대면하고도 그 생명이 보존된 연합의 사람,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영성으로서 이스라엘, 그 이름을 남기고 갔습니다.  우리도 한바탕 신앙의 싸움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 이름 하나 가지고 갑니다.  그 이름 하나 세상에 남기고 이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Calvin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100% 하나님이 하시고, 100% 인간이 한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이론으로는 100점인데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100%하시고 우리가 또 100%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저는 알아듣기 쉽게 실제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이 99% 일하시고 인간이 1% 일합니다.  어떤 열심 있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9할을 하시고 인간이 1할을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왕의 일을 도와도 1~10%가 한계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내가 다 하니까 조금도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인생은 하루살이란 뜻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추진하십니다.  준비하시고 성취하십니다.  일꾼들을 훈련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때를 조성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때가 이르매 그 종을 보내십니다.  부르시고 맡기십니다.  그리고 회계하고 결산하십니다.  하나님이 100%하시지만 1%는 인간과 함께 일하십니다.  인간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추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시고 일한 데로 상급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맡기시는 데 모세가 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며 숙소의 길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출 4:24).  ‘니, 죽을래?’ 주의 영광은 죽음과 생명을 직면시킵니다.  하나님은 사역의 주인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를 죽이시고 살리시는 분이시며 맡기시고 앗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다 하시고 모세는 조금 심부름만 하면 되는 데 빼고 사양하고 이유를 다니까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잔 머리로 변명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4-25).  어리석은 주장을 펴는 게으른 종에게 주인이 더 길게 말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지식도 믿음도 없는 종아! 너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 종으로서 주인의 일을 돕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뭐가 있느냐 누가 너더러 왕노릇 하라더냐 왕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도 없었더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6-3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왕의 일을 도웁시다.  우리의 사역이란 사실 기껏해야 왕의 일을 약간 도우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왕께서 당신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약간 도우라고 명하실 때 변명하지 맙시다.  사양하지 맙시다.  거저 안 죽고 살기 위하여 충성합시다.  작은 일에 충성합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조금 도움을 드리는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친히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십니다.  심은 데서 거두게 하시고 헤친 데서 모으게 하십니다.  마당도 만드시고 멍석도 펴십니다.  기회도 만드시고 골도 직접 넣으십니다.  우리에게는 다만 약간의 도움과 시중을 요구하실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인이 잡수실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어야 합니다.  주인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답변해야 하는 것입니다(눅 17:8-10).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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