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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 예수님의 교회적 인격의 특성
고린도후서 5:14-17

   예수님의 인격은 정말 독특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위대한 신분상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 체험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영원을 두고 새록새록 새로운 경이로 작용할 줄 믿습니다.  바울 사도가 롬 6장과 엡 2장에 기록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하여,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 어떻게 그러한 신비로운 일이 일어납니까?  조직신학에서는 무어라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라고 간단히 정의합니다.  오늘부터 바로 그 부분을 예수님의 신분상 특성이란 제목으로 알아봅시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소식입니다.  고전 15:3-4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적시한 4개의 동사로 표현합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이 증언은 신학적 해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성이 없는 종교적 원리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확실한 실제적 근거를 가지고 있고 그 사건들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세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눈으로 보고 증언되는 것들입니다.  복음은 인류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으로써 역사적 사실입니다.  

   동시에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냥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죽음은 그 죗값을 지불하여 만족시키고 또 소외된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른 이를 위하여, on behalf of or in place of, 어떤 사람이 대신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속죄와 대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4가지 동사로 표현된 각 사건 즉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보이신’ 깜짝 놀랄만한 사건은 우리를 위한 사건이요, 우리를 대신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필요했을까요?  예수님의 구속 사건들은 실로 우리가 경험하기에 너무나 슬프고도 부담되는 무섭고 놀라운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경이롭고 황공스런 사건들을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과 직결시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 15:2).  주님의 신분에 일어난 그 사건들은 우리가 믿으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독특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기록했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인간 역사 세계 안에 일어난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 사건이 비록 이천여 년 전에 일어난 것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까지 변혁을 끼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신분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 우리들의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오직 ‘예수 부활 사건’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은 시간 세계 안에서 일어났기에 역사적 사건이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하고 전무후무한 획기적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한 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음으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들의 그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우리들의 죽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죽음, 십자가의 죽음, 대속의 죽음으로써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자리에서 나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나를 섬겨주신 것입니다(P.E. Hughes). 할렐루야!  

   Athanasius 교부가 말했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 주님의 몸에서 다 완료되었다(Consummated). 사망과 부패가 그 말씀, 곧 창조와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파멸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범죄한 것처럼 예수님 한 분의 의로운 행동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된 것입니다(롬 5:18).  아담과 그리스도, 이 두 사람의 한번의 행위가 우주적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아담과 그리스도, 두 사람만 있을 뿐이고 다른 모든 사람은 이들의 허리에 메달려 있는 형국입니다(Thomas Goodwin).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신 다음 우리의 신분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우리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자의 신분 속에서만 살게 됩니다.  철두철미 그분에게 연루되어 생명을 얻고 삶을 얻게 됩니다.  이 복된 종속, 자유로운 헌신의 특권을 본문 15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려 함이라!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본문 16절에 ‘이제부터는’이란 말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를 말합니다.  각 개인이 거듭나서 성령의 깨우침을 받은 때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육체로 사는 세상적 가치의 기준은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합니다.  외모로 하는 것은 인종, 지위, 부, 명예와 같은 세상적 특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지식은 잘못된 기준과 외부적인 것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생깁니다.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에서 알고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 교회 중심(엡 2:15)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새로운 인성이 창조됩니다.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오는 세상으로 옮겨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그분 안에서 우리의 안전이 보장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가 영접 받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영광도 유업도 그분 안에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도 그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새로운 창조의 건설자이십니다.  이것은 또한 옛것은 지나갔으나 옛것까지 새롭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진리는 신자의 현재의 몸과 미래의 영광스런 몸 사이에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그의 죽으심, 묻히심, 부활과 승천은 신자의 개인적 생명의 차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 창조질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만물의 완성은 새로워진 인생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워진 우주까지 포함합니다.  복음은 지옥의 심판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영광스런 선포입니다.  옛것이 지나갔다는 것은 죄와 옛 질서, 즉 육체적인 것들은 새 질서와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마 1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원문에는 βιβλοσ γεσεωσ라는 말이 먼저 나와 강조됩니다.  βιβλοσ γεσεωσ란 말은 단순히 족보라는 뜻 이상의, 시작이나 출처나 출생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시작이 일어났음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가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의 창조와 죄로 인한 타락의 시작을 기록한 것이라면,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죄에서 구속하여 재창조하신 시작을 기록한 것입니다.  마 1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그리스도시오(1:2-25) 다윗의 자손이신 우리의 진정한 왕이시며(2:1-12)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이란 교회(2:13-23)가 되심을 계시합니다.

   마 2:15에는 아기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가신 사건을 호 11:1절의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 한 분을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말하는 내 아들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가신 사건을 바로 그 사건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온 이스라엘이 있고 온 이스라엘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일이 눅 9장에도 나타납니다.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습니다.  그 별세란 말이 출애굽, 탈출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Την εξοδον αυτου, 그의 Exodos에 관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동일시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과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구원의 인도자는 모세가 아니라 실상 예수님, 그들을 따르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셨다는 것입니다.

   행 9장에도 같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울이 주님의 제자들을 모조리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그는 갑자기 하늘에서 비추는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예수님은 자신과 교회를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시고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요 또한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곧 교회요 교회의 머리로서 당신의 제자된 우리들 자신과 동일시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요 성도란 말은 예수님의 신분적 특성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보편적 교회의 집단적 차원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예수님은 독특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집단적 인격(cooporate personality)의 독특성, 교회적 공동체적 인격의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 의미로, 보편적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예수께서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메시지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으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임마누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낮아지시고 또한 우리를 당신의 아들의 신분으로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핏덩이 어린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무슨 힘이 되고 위로가 되겠습니까?  임마누엘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핏덩어리 예수님 곁에, 바로 옆에 더불어 산다는 것 이상입니다.  핏덩어리 아기 예수 안에 우리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성탄절 즈음에 시므온 장로가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게 예언합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4-35).

   마리아는 그녀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당하실 때 칼이 찌르는 것 같은 격심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아이의 생명이 어머니와 서로 결탁되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창 44:30).  인간인 마리아 편에서 어머니와 아들로서 하나 됨을 느꼈다면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 믿는 성도를 얼마나 당신의 외아들과 하나 됨으로 여기시겠습니까?  저는 여기에 진정한 임마누엘의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곧 하나의 인격 안에 하나의 신분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새로 태어난 날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출생한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짜 생일은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각자의 생일잔치 대신에 성탄절에 성대한 공동 생일잔치를 차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이 세상에서 천국 복을 맛보는 은혜의 방편이 무엇입니까?  보혜사 성령과 신구약 성경과 교회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와 대표로서 승리하신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적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한 날입니다.  지옥문을 닫고 천국 문을 연 날입니다.  성령의 첫 열매를 거둔 승리의 날입니다.  부활절은 성령과 성경과 교회의 진정한 탄생일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교회적 인격 속에서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신분적 특성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성령과 성경과 교회 안에서 하나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성령 안에서 남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한 분 성령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성화되고 성령으로 영화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살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성령으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 안에서 남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이방인도 없고 유대인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신분이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지 않습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나일 따름입니다.  셋째, 우리는 교회 안에서 남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약한 지체가 더 요긴한 몸입니다.  한 지체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도 차별할 수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성경 안에서, 교회 안에서 언제까지나 하나입니다.  이 진리를 기뻐하시고 큰 확신과 능력을 만끽하십시오.  “오 주여 예수님의 교회적 인격의 특성 속에서 언제나 하나로 인식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 17:11)”  이 주님의 기도 속에, 이 공동체의 정신 속에, 이 관계 속에, 이 심정으로 살아갑시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하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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