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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
빌립보서 4:14-20

   빌립보 교회는 특이한 교회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본문에서 극진히 칭찬한 이 교회는 바울 사도의 쓸 것을 어려운 경제 사정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공급하였습니다.  그래서 14절에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고 했고, 15절에는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주고받는 일은 친밀한 교제의 증거입니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달라고 할 수 있고 배우자 간에 달라고 할 수 있으나 다른 관계는 참 힘듭니다.  빌립보 교회는 시간 드리고 몸을 드려 헌신했을 뿐 아니라 물질 드려 헌신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대로 시간 드려 충성하면 신령한 은혜를 받고, 몸 드려 충성하면 건강의 복을 받고, 물질 드려 충성하면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17절에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고 했는데 바울에게 전달된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은 사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투자였습니다.  그 선한 투자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보다 풍부한 이익과 배당금이 돌아갔습니다.  19절에는 여러 번 바울에게 물질을 공급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사도가 축복을 선언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심한 불경기와 경제적 불황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이보다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보다 더 큰 은행과 보험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모든 쓸 것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보험 하나 들고 은행 통장 몇 개 있다고 우리 모든 쓸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갑은 비고 또 빌 것이며 열 마리의 약대처럼(창 24:46)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들을 끝없이 요구할 것입니다.  신 33:25에서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물질로 헌신하는 빌립보 교회 위에 영광스런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역사책을 뒤적여 보지 않아도 빌립보 교인들은 그 당시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제일 부유하고 강건하고 명랑한 삶을 산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올해 ‘설립 55주년을 맞이하는 송도제일교회’에 적절한 시련과 빛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시련 가운데서 믿음과 부흥의 빛을 비추시며 건강과 경제의 빛을 비추시며 기적과 형통의 빛을 비추십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빛은 언제나 시련과 함께 옵니다.  신자가 믿음으로 이렇게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시련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시련은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들을 당신의 계획 안으로, 빛의 축복 가운데로 끌어들이시는 것이며 우리들 편에서는 그룹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대로를 수축하는 것입니다(시 68:4).  

   생활고의 기근 속에서 남은 것은 오직 한 조각 떡을 만들 품목뿐이었던 사렙다 과부에게 이 빛이 비치었을 때 그녀는 최후의 것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그녀의 믿음을 증언했습니다(왕상 17:11-15).  무엇이든지 마지막 남은 하나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메시지를 들은 그녀는 그것을 아들에게 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녀에게 빛이 비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냄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노라”(눅 4:25-26).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녀를 돌아보시고 구원하려고 하실 때 먼저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그 마지막 떡 한 조각을 청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녀를 당신의 구원계획 속으로 끌어들이시며 그녀의 떡 한 조각과 연결하여 기적을 베푸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녀는 현명하게 선택합니다.  떡 한 조각으로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을 맡기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권고하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오늘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뢰하자 하나님은 그녀에게 내일의 생명을 허락하셨고 남은 기근의 기간을 넉넉하게 통과할 수 있는 경제의 빛을 비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최고 최후의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나머지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주님과 연결고리를 삼아야 합니다.  사렙다의 혼자 된 여인이 그 아들에게 줄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그녀의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존재는 아들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언약에 불변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내 생명, 내 미래를 하나님께 맡긴 다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주권적 선택에 따라 되받고자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주신 그분이 또한 데려갈 수도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 아니신가?”라는 믿음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자유로워집니다(요 8:36).  할렐루야!  제일 좋은 것, 제일 좋아하는 것, 제일 귀한 것, 유일한 것, 내 영혼과 내 생명, 내 아들과 내 보배를 하나님께 맡겨놓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한국영화를 보면 여주인공 미대생이 애인에게 말합니다.  “내 초상이 그려진 내가 만든 라이터가 하나 있는데 다른 남자 친구에게 줄려고 하면 늘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네게는 꼭 주고 싶어”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엣세이에서 읽었습니다.  “어머니나 아내가 닭을 잡으면 가장 귀한 부분을 늘 나에게 주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귀한 것이 아들의 국그릇에 담긴 것을 발견하고는 아내의 사랑이 아들에게 간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귀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 맡기고 싶은 그 마음이 사랑입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오천 명에게 이 빛이 비치었을 때 한 아이는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바침으로써 금식하였습니다(요 6:9).  금식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기쁘게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자기 욕망을 절제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 58:9-11에서 잘 말씀합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한 아이의 희생과 연결하여 예수님은 빈 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희생 없이 기적 없습니다.  희생 없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먼저 대접함 없이 하나님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마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도 남입니다.  그 하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하고 금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행 13:2).  집이 세움을 받고 성이 지킴을 받습니다(시 127:1).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와 헌물을 단 마음으로 바치면 빛이 비추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연속되고 증가됩니다.  한 아이가 안드레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을 때 주님께로부터 열두 광주리 가득 넘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응하십시오.  교회의 요구에 응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성공을 이웃과 나누십시오.  이웃을 성공시키십시오.  눅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고, 빌 2:17-18에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고 더불어 이웃을 섬길 때 여러분의 승리는 반짝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은 절반의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온전한 승리, 끝없는 성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민족주의자 M. 간디는 일찍이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를 역설한 바 있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도의 없는 기업, 근로 없는 축제, 인간성 없는 과학, 인격 없는 지식,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이 그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세상을 위하여 희생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빛을 보고 어디서 소금을 맛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며(출 19:6) 최후에는 우리 경내에서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희생하는 소금이 되고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될 때 우리를 통하여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시다.  “능히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는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는 적게 심는 자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두는 줄 믿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여, 우리에게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고후 9:6-10).  우리는 물을 끌어올릴 때 먼저 펌프에 물을 붓습니다.  이 마중물은 샘에 물을 더 붓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가난한 과부에게 이 빛이 비치었을 때 그녀는 두 렙돈 곧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습니다(눅 21:1-4, 마 12:4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생활비 전부를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왜 그녀가 생활비 전부를 넣었을까요?  충동적으로 헌금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아닙니다.  헌금은 미리 준비해서 정성껏 드리는 것이 참 연보답습니다.  오히려 자기 분수를 헤아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5, 7)고 했습니다.  짐작컨대 그녀는 주님의 임재 앞에서 자기가 받은 은혜에 크게 감격하고 그런 은혜에 대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해서 그런 큰 헌금을 한 줄 압니다.  시 66:13-15에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이 여인은 환난 때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수양의 살진 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가난합니다.  이전에도 훗날 돈 벌면 크게 드릴 것이라고 자위했지만 오늘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 최대의 것 곧 두 렙돈을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헌금에 대하여 정확하게 평가하셨습니다.  “그녀의 헌금은 생활비 전부이다.  부자의 한 달 생활비 수백만 원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 헌금이다. 나는 그녀의 회개하는 중심과 함께 그녀가 서원 갚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눅 7:37에 나오는 한 여자와 요 12:3에 등장하는 마리아가 숨겨 놓은 보화를 주님께 드린 봉사를 보십시오.  아리마대 요셉이 위험 부담을 안고 담대하게 나타나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고 자기 무덤에 장사한 헌신(요 19:38)을 보십시오.  모두들 주님께 모범적으로 헌신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타서 마음속에 있던 헌신을 행위로 드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허비하느냐”고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봉헌을 귀하게 받아주셨습니다.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막 14:6-9).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방랑을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할례 산에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 그들의 대를 이은 자손들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온 백성이 할례 행하기를 필한 다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노라’ 그래서 그 곳 이름을 길갈이라고 불렀습니다(수 5:2-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난 55년 동안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모멸을 잠재우며 주님의 은혜로 복락을 누리며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모범적인 신자들은 그때그때마다 만강의 감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다수는 감사다운 감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설립 55주년을 맞이하는 빛과 시련의 절기’에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

   무엇이 우리 신앙생활에 수치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아니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딤전 6:6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했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금년 맥추감사절에는 은혜를 잊어버린 지난날의 수치를 떠나보내고 가나안의 첫 유월절을 맞이합시다.  감사를 잊어버린 수치가 굴러가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상속합시다.  믿음과 사랑이 풍성한 신자가 됩시다.  금식이 있고 희생이 있는 신자가 됩시다.  어느 한 가지라도 감사를 잊어버리지 않는 신자가 됩시다.  원한은 물에 새기고 감사는 돌에 새기는 신자가 됩시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는 담대한 신앙을 회복합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의 감사와 사랑을 용감하게 실행합시다.  우리 모두 빌립보 교회처럼 하나님께 드리고 받는 일에 참여하는 특이한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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