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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8일 / 다른 보혜사와 함께
요한복음 16:12-16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놀라운 약속들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권위 있는 약속들은 역사상 그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말해진 적이 없었습니다.  마 28:20은 교회에 주신 지상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18:20에는 이런 놀라운 약속도 주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 만에 살아나신 후 아버지께로 승천하신 다음 그분의 육체적 현존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약속의 성격이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가운데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십니까?  정말 그리스도께서 가깝게 계신다면 오늘날도 팔레스타인에 계셨던 것처럼 똑같이 놀라운 일들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단지 공허한 과장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해 계심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세 가지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통하여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이 요 14:16-20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평생의 모든 시간에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란 말은 매우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헬라 원문에서 ‘돕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고 오신 분’을 의미합니다.  이 성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신을 돕기 위해 신자 곁으로 보냄 받은 첫 번 보혜사로 설명하시고, 다음에 성령님을 당신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우리를 돕기 위해 보냄 받은 교회의 상부구조인 또 다른 보혜사로 설명합니다.  

   상부구조란 표현이 낯섭니까?  예수는 교회의 머리요(엡 1:22) 그의 몸된 교회(골 1:24)라는 표현보다는 더 현실감 있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벧전 4:14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이란 권능과 사랑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위에 계심은 드러남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의 온갖 정황 속에서 끊임없이 그들을 곁에서 돕고 위로하고 인도하신 첫 번째 보혜사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임박했을 때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아버지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리라’ 예수님이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불렀는데 헬라 원어로는 allos parakletos입니다.  이 allos는 동 종류의 다른, 똑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정확하게 첫 번과 같으면서도 다른 성삼위의 제삼위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오십 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강림하신 이래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정확하게 똑같은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 안에서 계속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의 기름 부음에 의해 당신의 복음 선포사역을 계속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시고 그분의 몸인 교회는 지금 여기 땅 위에 존재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부은바 된 바로 그 성령이 오늘날까지 연면히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오늘날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 위에 계실 때에 행하신 그대로의 구원 역사를 또 다른 보혜사께서 정확하게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도, 복음은 그리스도의 지상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의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상한 가슴들이 치유되고, 성령의 권능에 의해 포로 된 자들이 놓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건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고 육체적인 소경까지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지상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가져다준 은혜의 선물을 공급하시기에 분주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맨 처음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안에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고 지금은 여기 지상에 있는 당신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증언하십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결같이 성령의 세례로 기름 부음받습니다.  성령님은 교회와 함께 일하시며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던 것과 똑같은 사역을 지금도 행하고 계십니다.

   셋째, 사도행전의 책은 오늘까지도 계속 기록되고 있습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사도행전의 기적은 오늘날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이 놀라운 일들은 제1세기에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써 보낸 서신의 서문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새삼스레 발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행하시고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란 표현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예수께서 그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끝내셨다는 그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2천 년 전에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처럼 성령을 통하여 행하시고 기르치시고 계십니다.  막 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했고, 요 14:16와 요 16:13-14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여기에서 주목할 말씀은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오시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복이요 복사판입니다.  오늘날 21C 초에도 성령은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시작하신 바로 그 일을 신자들을 통하여 계속 행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반복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신자들이 미지근하고 냉담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한 보혜사로서 교회의 상부구조(superstructure)이신 성령님을 그분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인 우리가 스스로 제한하고 거스르므로 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인치신 하나님의 성령께 근심을(엡 4:30)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 전설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 1:17-19에서 경고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여기 성령이 없다는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이 어딥니까?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지 않으시는 심령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인다면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놀라운 역사와 가르침과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을 받고 병자는 치유되고 악마는 쫓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놀랍게 응답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당신의 사역을 아직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사역을 또 다른 보혜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여전히 행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요 그분만이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신 4:35).  초대교회의 Marcion으로부터 감람나무까지 자칭 보혜사가 수두룩한 데 모두 이단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들의 행전은 끝나지 않았고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통하여 계속될 것입니다.  금년 부활절이 4월 1일이므로 그때부터 50일이 지난 5월 20일이 성령강림주일 입니다.  그날은 성령이 강력한 불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임재한 날입니다.  2천 년 전 오순절부터 지금까지 그 불은 계속 전달되고 파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우리 영혼 속에 위로부터 새롭게 임재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결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연결시키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시고 사역을 온전케 하시며 연합과 성결을 도모하십니다.  그 중에 간단한 두 가지 측면만 상기해 봅시다.  

   첫째,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새롭게 하시므로 행복하게 하십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30).  창조하신 이가 또한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창조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심령이 새로워집니다.  밝은 인식력을 주시고 창조와 섭리와 계시, 그 안에 비밀한 것들을 깨닫게 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얼마나 오목조목합니까?  얼마나 질서정연하고 아름답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낍니다.  바울 사도는 늙어가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6-18).  겉사람은 늙고 병드는 육체입니다.  육체는 환난을 당하고 이 세상의 보이는 것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사람은 보이는 세상과 육체의 고통 속에서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크고 육중하고 영원한 그 무엇이 내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옛것의 반복이 아닙니다.  세월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고 매 순간이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영원히 새로운 생명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썩어질 육체가 무너질 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때 묻지 않고 쇠하지 않는 집과 몸과 환경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여름은 결코 단순한 옛것의 반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권능과 지혜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이번 주일도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복음성가 “축복하소서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도록⁄주는 아버지 우리는 주의 자녀, 주님 두 팔로 안아주소서 / 축복하소서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도록”를 다같이 부릅시다.  영원한 새로움을 맛보는 것, 그것은 분명히 영원한 생명의 한 부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그분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기도는 성령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기도 자체가 성령의 사역일 뿐 아니라 성령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가 고전 2:9-11에 썼지요.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에 이끌려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가상세계로 들어가듯이 신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세계로 들어갑니다.  기도의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용의주도하고 면밀한 세계를 발견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제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는 깊은 안식을 누립니다.  자신감이 넘치며 간간히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기도하는 신자들이 발견하는 하나님의 성은 너무나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나 세심하고 꼼꼼합니다.  신자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하나님 통치의 한 부분을 맛봅니다.  정의와 인자가 충만한 하나님의 세계를 조망하는 법을 배웁니다.  시인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 통치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주의 심판으로 인하여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들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라”(시 48:11-14).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여러분께 성령강림주일이 되어 위에서 부으시는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불기둥의 인도하심 따라 짧은 순례길을 의미 있게 걸으며 안으로는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를 받고, 밖으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를 감상하는 은혜를 누립시다.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영적인 감수성과 통찰력이 더욱 세련되고 깊어지는 신령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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