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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 역려과객의 수칙들
시편 39:12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객이요 거류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영원토록 거할 수 있기를 내심 바라기 때문에 그들은 “개똥에 뒹굴어도 이 땅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 땅에서 확고한 거처를 도무지 확보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왕후장상과 부호들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들의 해골이 파헤쳐지지 않았다면 천만다행일 따름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객이요 거류자들이지만 그 점을 가장 잘 분별하고 거리낌 없이 시인하는 사람이 신자들입니다.  신자는 자신이 아무리 안정된 상태에 있을찌라도 이 땅에서 객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고 거류자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오늘 본문에는 객과 거류자란 단어들이 사용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  히 11:13-16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자신을 객과 거류자로 자처하는 것, 외국인과 나그네로 간주하고 살아가는 것은 강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객(alien)이란 외국에서 거주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비록 어느 나라에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토박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치 한국 사람이 미국시민권을 지니지 않은 채 미국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거류자(stranger)란 정착할 뜻이 없는 상태에서 어느 나라를 경유하고 있는 여행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결국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이 두 가지 단어는 우리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를 내려줍니다.  천국이라는 다른 곳의 시민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분명히 객이요 외국인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국,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분명히 거류자요 나그네입니다.  찬 376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라는 찬송의 옛날 가사는 “역려과객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라고 했습니다.  역려과객이 무엇입니까?  길 가는 나그네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이 세상과는 별다른 연고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치 여관과 같고 인생은 이 여관에 잠시 묵고 가는 나그네와 같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이런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취급을 받습니까?  그때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로 대응해야 합니까?  시인은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와 같다”고 탄식합니다.  여기 ‘주께’는 ‘주와 마찬가지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마찬가지로 나는 인자들 가운데 객이 되고 형제들에게서 소외됩니다.  우리 선조들은 방랑자처럼 인생행로를 지냈으며 이제 그 무덤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선조들이 죽을 운명이었던 것처럼 후손들도 그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든 혈육들은 예외 없이 지나가는 방랑자들입니다. “오 주여, 역려과객 같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기억해야 할 수칙들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첫째, 객이란 자신의 본국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사람입니다.  우리 본국은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일 객이나 거류자의 처지에 놓인 사람이 조국의 동포가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금방 친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주인도 토박이도 아닙니다.  다만 하늘나라 공동체의 일원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도와 같은 세상에서 자주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터미널에서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만나게 하신 하늘가족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포용하며 위로해주는 하늘나라 객주점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외국에 사는 객은 그의 출생과 교육과정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서울대학교 나왔다고 외국에서 그 정도로 알아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 받고 예수님의 순종으로 의로움을 얻는다는 진리는 세상이 알아주는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났고 성령으로 길리움을 받고 있지만 세상은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모릅니다.  오히려 오해하고 미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마치 위장한 어린 왕자와 같고 거지 왕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멸시를 받습니다.  미움과 오해의 과녁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은 마치 외부 침입자처럼 대했습니다.  주인을 그렇게 대우했다면 그 주인의 종들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요 15:18-20).  이 두 가지 성격의 반응이 우리에게 늘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셋째, 객은 불편을 겪기 마련입니다.  교부 Tertullian이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외국에서 들여온 낯선 식물 같아서 세상의 토양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며 번성하지도 못한다”  객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도 크게 항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그네의 품삯과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현재 우리는 외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감당할 만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생의 일들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객은 최소한의 호의에도 감사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들로 만족해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적은 것도 많아 보이는 법입니다.  넷째, 객은 본토박이들에게 혐오감과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마 10:16-17)”

   다섯째, 객은 자신이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은 사지 않습니다.  그는 나무나 돌 혹은 가정에서 쓰는 각종 잡동사니들을 구입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보석이나 진주 등과 같이 휴대할 수 있는 귀중품들을 삽니다.  그와 같이 신자는 언약의 말씀이나 성령의 은혜와 같이 항상 우리와 함께할 보석들을 구입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의 애정과 관심을 위에 있는 것들에 고정시키고 항상 천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삽니다.  우리 교회 선교구역회, 부속회, 금요순장대학, 전도사랑방에 참석하셔서 그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여행 중인 객은 가능한 빨리 체류지를 떠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을 향해 여행 중인 우리는 하루 속히 이 세상을 떠나기를 소원합니다.  객의 마음이 자신의 본국에 가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천국을 그리워합니다.  객이 상인처럼 귀한 것들을 가득 싣고서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를 힘씁니다.  시편 84:5-7에 말씀하셨지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우리 모두 본향을 향해 달려갈 때 봉달이(마라톤의 이봉주)처럼 인내합시다.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갑시다.

   일곱째, 객은 길을 잃지 않도록 거듭 물어보고 확인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한마디로 주께서 역려과객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어디서나 내게 call하라 anycall하라 내가 응답하리라”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가련한 객과 같은 우리에게 크신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호와의 은총은 정처 없이 떠도는 우리 인생을 세심하게 보살피십니다.  역려과객 같은 저와 여러분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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