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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시편 51:9-13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는 말씀대로 유대의 왕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이런 미사여구에 잘 속습니다.  그러면 다윗 내면의 실상을 보기 전에 외부적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을 먼저 스케치해 봅시다.  그는 무엇보다 예술적 심정을 가진 심미가였습니다.  수금을 잘 타고 음악적 감수성이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19C 영국 시인 Keats가 말하기를 “들리는 음악은 감미롭다, 그런데 들리지 않는 음악은 더욱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생활 범사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애정과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는 시정을 가지고 마음의 전원을 가꾸었고 그 느낌을 정열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그는 석양에 비친 햇살과 노을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 57:7-11).  그래서 예술가는 가난해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목자의 삶 속에서 양의 큰 목자이신 주님의 심정과 행사를 느끼고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신앙 속에 그의 남성적인 용기가 길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이 출전한 전장에서 적장 골리앗과 엄청난 접전을 벌리게 됩니다.  그의 신앙이 용기로 무장되자 겁 없이 앞으로 달려가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삼상 17:45-46).  그는 하나님 의지하고 매끄러운 돌 다섯 개 달랑 들고 나가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그런가 하면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 또한 걸작입니다. “Be a man!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어라 신앙은 용기 그 자체니라”(왕상 2:2)고 유언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솔직하고 겸허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자 너무 좋아서 주일학교 아이들처럼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의 행위를 비꼬아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삼하 6:22).  나를 높여주는 이는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된 후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천연덕스럽게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나는 비천한 가문의 후예입니다 가난한 베들레헴의 촌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가계에는 이방 여자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7:18-19).  우리나라도 최근에 배달민족이 아니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답니다.  북방 기마민족과 남방민족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세요.  수백 대를 내려오며 얼마나 복잡한 유전인자가 섞여 있는데 무슨 집안 자랑, 혈통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나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나이까?”(삼하 7:8-9)

   이런 훌륭한 신앙가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봅시다.  그가 왕이 되면서 관례대로 예루살렘에 처첩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여인을 얻기 위해 충신을 전쟁에 나가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게 되자 그의 눈에 거칠 것이 없었고 세상이 온통 자기 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미 맛보고도 짐짓 죄를 지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경험이 있는데도 거스려 행했습니다.  그가 선지자요 왕이었기에 그의 죄는 일반인보다 더 컸습니다.  그 영향력이 백성들에게 대대적으로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그럴 수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윗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왕이 된 사나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단순하고 정직했던 사나이, 백성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던 성군, 백성들과 가족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고, 만세의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영웅이며, 멋쟁이 시인 선지자가 한 순간에 악질 살인교사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성결생활의 기준을 사람에게 두지 마십시오.  사람은 모두 거짓됩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너무 내세우지 마십시오.  반드시 실망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광대하고 거룩하신 의만 바라보십시오.  말씀 따라서 조심스레 살아가십시오.  겉으로는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모든 범죄의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에게 이미 내재해 있던 전적 부패성이 슬며시 들어났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롬 7:18-19에서 말씀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다윗이 자신의 상부구조이신 성령의 밝은 조명 아래 자기 내면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자 그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삼하 12:13)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소서”  베드로 사도는 거꾸로 고백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Lord, I am a sinful man”(눅 5:8).  똑같은 말입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고, 나는 죄가 커서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아무 희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발견한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은 그 죄를 어떻게도 처리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 곧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입니다(참고 ; 사 6:5,7)

   오직 예수 믿어 죄사함 받고 의인이 된, 용서받은 죄인 욥이 고백합니다.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말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오히려 매일매일 하나님의 계명을 범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위로 날마다 범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실상을 발견하고 전율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소서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지옥으로 버림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나는 가망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구원의 은혜를 만납니다.  바울 사도가 외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siners of whom I am the worst, 죄인 중에 내가 최고 악질입니다”(딤전 1:15).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가망 없는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  그분만이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그분의 몸된 교회만이 죄인들이 숨 쉴 수 있는 곳입니다.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합니다.  회개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그러자 즉시 나단 선지자가 그에게 사죄를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이다”(삼하 12:13).  죄인이 죽지 않고 다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복음 안에서만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선상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어떤 이의 죄는 먼저 들어나고 어떤 이의 죄는 뒤에 들어날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똑같은 죄인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엡 4:18).  이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다윗을 찾아오셨고 그의 죄를 도말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 죄를 사해 주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했습니다.  찬 423장, ‘먹보다도 더 검은’을 다같이 부릅시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용서함을 받고 난 다음에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결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주의 성령께서 막아주시고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셔야 합니다.  주의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셔야 합니다(시 51:10-12).  주의 성령이 나를 지배할 때 우리는 큰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시험을 이깁니다.  오직 주의 성령이 함께 계실 때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즐거움으로 주를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10-11에서 성결의 비결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나아가 죄를 심판하여 이기신 예수의 생명을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은 죄의 힘과 권세를 심판해서 죄의 정욕을 죽이고 빼앗습니다.  심판하다는 헬라말 카테케이나, κατεκείνα는 재판하여 심판을 내림으로 죽여서 그 권리와 힘을 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의 생명을 힘입을 때 우리는 죄에서 승리합니다.  유혹에서 이깁니다.  세상과 마귀와 육체를 이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좀 우쭐한 면이 있었습니다.  들떠서 자기의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회개가 깊어지자 자기 잘난 것이 죽고 화도 참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 같은 시므이가 그렇게 떠들고 욕해도 “여호와께서 나를 욕하게 하시니 내가 무슨 말하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죄인이 아니다, 나는 좀 잘났다, 나는 남보다 훌륭하다”고 자랑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순간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에(고전 10:12) 거저 회개하고 성령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겸허한 회개의 연속은 그에게 ‘성령 안에서 매 순간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신앙생활의 승리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눅 18:9-14에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신자다운 삶이 산출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고, 남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도 비우고, 남을 이기고 지배하려는 의지를 꺾어야 합니다.  바리새인 의식에서 세리 의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다윗이 정말 위대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출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주님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시 6:6에 “내가 탄식하므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에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살았던 철저한 성령 의존자였습니다.  그의 상부구조인 성령님은 날마다 태산처럼 커졌고, 성령님의 하부구조인 자신은 날마다 그 산기슭을 등반하는 아이처럼 작아졌습니다(참고 ; 단 2:35,44-45).  그러자 성령이 주시는 풍성한 영감으로 신앙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감격과 자유를 예술화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그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요 쾌락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생을 맛보았고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천국을 누렸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 3)”  신앙의 혼이 없는 예술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결국 무가치합니다.  예술은 진리의 그림자는 되지만 인도자는 되지 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구주되신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분에게서 죄사함 받고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상부구조인 성령 안에서 진정한 용기와 심미적인 삶을 찾았습니다.  오늘 아침 주일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옛적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발견한 신앙세계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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