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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시편 32:1-7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께 회개했을 때 그의 슬픈 과거는 영광스런 과거로 바뀝니다.  정직한 고백과 온전한 용서로 인하여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이제 신자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대속의 복음이 신자로하여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짐을 받게 합니다(시 32:1).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억압을 받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개인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는 복된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을 가리켜 여러 은신처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는 ‘나의 은신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의’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기쁨입니다.  더욱이나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주님께 ‘나의 은신처’라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큰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할 때, 사랑해서 결혼했을 때 서로를 ‘자기’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날개 아래 피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당신과 더불어 재산과 특권을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자유도 시간도 함께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여호와를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나의 소유입니다. 주님은 나의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구원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나는 죄인으로서 당신의 사랑과 긍휼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날개 아래 피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의 겉옷으로 나 자신을 덮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안전합니다. 우리의 아지트, 보금자리에는 은밀한 교제, 친밀한 교환이 있습니다. 진정코 나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진실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속죄 사역의 유익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몫으로 소유한 사람은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죄악과 지옥, 죽음과 대적들, 의혹과 시험, 사고와 음모로부터 근원적으로 해방됩니다.  그의 아픈 과거는 속죄의 은혜를 찬미하는 영광스런 기억으로 바뀔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기쁜 현재로 대치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지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는 예수께로부터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기적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그분에게 나아가면 내 평생 언제든지 만족스럽고 즐거운 구원을 체험합니다.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위로자가 되십니다.  나의 보증자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십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피난처, 나의 도피성이 되신다는 진술을 가장 간단하게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신다”고 표현합니다.  나의 은신처 되신 주께서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의, 나를’이란 표현을 주의하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깨닫고 계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베푸신 그분의 선하심만이 아니고, 노아와 다니엘과 룻에게 베푸신 그분의 은총만이 아니라, 바울처럼 다윗처럼 나에 대한 그분의 선하심과 구원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심연에서부터 뜨겁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환난이 내게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은신처에는 숨긴 손길이 있고, 큰 손길이 있고, 견고한 망대(시 61:3)가 있고, 피할 바위(시 61:2)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뒤로부터 차례대로 나의 피난처, 나의 은신처 되신 여호와를 스케치해 봅시다.  첫째, 주님은 환난 중에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속한 자들을 변치 않는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위해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지 않았습니까?  사드락과 베삭과 아벳느고를 위해 그들을 풀무불의 열기에서 막아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많은 사람들의 구설수에서 면케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바울 사도의 선교여행 길에서 무례하고 무자비한 손길로부터 그를 건져준 적이 몇 번이었습니까?  우리의 인생길에서 주께서 친히 피할 바위가 되어주시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겠습니까?  주께서 과거에 여러분께 피할 바위가 되셨다면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의 피할 바위가 되실 것을 믿으십시오.

   둘째, 주님은 환난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할 견고한 망대가 되십니다.  성도가 사망 고통을 당하는 순간,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성도를 망대 안에서 마비시켜 무감각하게 만드십니다.  견고한 망대를 때린다고 망대가 아파합니까?  더 이상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습니다.  순교자 성 로렌스는 불 속에 던져져 타들어가면서도 참을성 있게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워하며 익살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갑자가 초인이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순간 그들에게서 고통의 감각을 앗아버린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똑같은 상태에서 환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시지만 그분의 은총 가운데서 그 환난에 압도당하거나 낙심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번 시내의 위험과 물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그가 탔던 배도 파선했습니다.  고린도 시에서는 복음 증언의 소강상태로 인하여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이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폭풍에 직면하겠지만 너를 둘러싼 튼튼하고 강한 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얼굴을 부싯돌처럼 강하게 하고 가슴을 내밀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신자는 뇌성이 울리고 번개가 번뜩여도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John Donne이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나로 하여금 환난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드시거나, 혹은 그 속에서도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모세도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누가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를 깰 수 있겠습니까?  잠언 기자가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Clinton Utterbach가 노래합니다. “주의 이름 송축하리… 주님의 이름은 강한 성루, 그곳에 달려간 자 안전하리” 할렐루야!

   셋째, 주님은 환난 중에 우리를 큰 손길로 이끄십니다.  무릇 큰 일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계획하시고 친히 실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4-6).  여호와께서 그 위엄과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십시오(신 11:2-).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습니다(신 32:11-12).  하나님이 큰 손길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광야를 통과케 하신 일은 사람 편에서는 엄청 어려워도 하나님 편에서는 쉽기만 합니다.

   보금자리가 위협당하고, 인간적인 계산이 서지 않고, 보장이 보이지 않는 그것이 바로 환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환난도 많았지만 위로도 많았습니다.  죄도 넘쳤지만 은혜도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이스라엘 전 역사에 걸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들이 부패하고 범죄하므로 바벨론에게 파셨지만 70년 만에 페르샤 고레스 왕을 통하여 해방시켰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경륜은 때가 되면 틀림없이 이루어지며, 하나님만이 온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역사의 주재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4월 14일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회담하는 것을 보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역사 위에 하나님의 큰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대한제국을 일제 38년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신 것처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공산 치하의 북한을 70년 만에 해방시킬 수 없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비록 환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철저한 신앙의 시련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7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을 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 126:1-3)고 노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만에 출애굽 하였고, 70년 만에 포로 된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환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손길이 대사를 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나라의 흥망성쇠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주장하십니다. “오 주님,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시고, 복음이 평양과 신의주까지 전파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의 오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시대에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이 땅에 평화통일을 허락하옵소서”

   넷째, 주님은 환난 중에도 숨긴 손길로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보배들이 많습니다.  보석과 같은 사람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진주 같은 여성과 사과나무 같은 남성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은 보물찾기’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절실한 구원과 필요한 도움을 인생의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공급하십니다.  우리로 구하게 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시 105:17-22에 기근과 환난 중에 여호와께서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셨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였도다”  그는 구원자 요셉입니다.  하나님은 환난 당하는 사람이나 그 환난에서 구원할 사람, 양자 모두를 단련시킵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역사 무대이므로 반드시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이 드러날 때가 옵니다.  그 손길이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고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십니다.  ‘주의 손길’이란 복음성가를 아시지요(William. J. Ganther 작).  “험한 세상 나그네 길 나의 맘이 곤할 때 사랑스런 주의 손길 내 맘을 항상 두드리네⁄오 주님, 나의 주님, 내 맘에 기쁨 넘치네. 나의 기쁨, 나의 생명, 주 손길 날 구원했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했습니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신 33:25-27).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하신 팔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숨긴 손길이 언제나 여러분을 껴안고 어루만지심을 믿으십시오.

   은신처 되신 주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요 견고한 망대입니다.  큰 손길이시며 숨긴 손길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십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환난에 휩싸이듯이 또한 수많은 위로와 구원으로 에워싸입니다.  환난이 오면 구원도 옵니다.  우리의 십자가가 날마다 무거워지듯이 우리의 위안 역시 날마다 늘어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공격을 받고 또한 사방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처럼 사방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를 발해야 합니다.  보호받는 현재의 체험은 즐거운 미래의 찬양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는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얼마나 놀라운 예언이며 황금 같은 고백입니까?  다윗은 신앙고백의 노래와 감격적인 자비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은총으로 인한 승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원은 전혀 단절된 부분이 없이 그의 주위를 완벽하게 두르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소망의 심벌즈 소리와 감사의 탬버린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우측과 좌측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기쁨이 솟구칩니다.  

   그는 감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감사를 노래와 결합시킵니다.  그의 마음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갖가지 구원들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안팎의 온 힘을 기울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셀라의 첫째 의미,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토록 놀라운 사랑은 깊이 숙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큰 기쁨은 조용한 묵상을 필요로 합니다. 언어로써 그것들을 표현하기란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입을 절반쯤만 벌릴 수는 없습니다”  집안에서 추한 발라드는 큰 소리로 부르면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기의 음성을 자신이 들을 수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셀라의 둘째 의미, 음을 높이고 끝을 올리십시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큰 소리로 합시다.  큰 찬양 소리 때문에 마치 하나님의 귀가 먹기라도 하실까 봐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 다같이 본문의 말씀을 큰 소리로 고백합시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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