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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2일 /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요한복음 14:31

   요한복음 14, 15, 16장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고별설교입니다.  다락방 강화라고도 불리우는 예수님의 이 설교는 산상보훈과 더불어 예수님의 2대 설교라고 말합니다.  산상보훈이 유대적이고 윤리적인 특징을 가졌다면 다락방 강화는 다분히 십자가와 부활 중심의 특징을 가집니다.  따라서 구속의 진리를 기초로 한 보편성을 띤 복음적인 설교라고 평가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14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절).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6장은 굉장한 위로의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절). 할렐루야!  우리가 이 14, 15, 16장을 가만히 읽어보면 주님께서 굉장히 흥분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나이다”(16:29).  예수님은 지금 그분의 가슴 속에 감추어두었던 진리의 말씀을 분출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 속에 강박하던 하나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시는 평안에 관해서 신앙생활의 서론적인 면을 골고루 말씀하시는가 하면, 더 깊고 구체적인 진리 곧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성취하실 희생과 부활의 생명에 관한 구속의 결정적 계시를 언급하십니다.  그리고는 가슴 벅찬 감정을 정돈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향하여 외치십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15:30-31).  여기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라고 말씀하신 데는 복잡한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전할 말이 있다, 중요한 진리이니 너희가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겠다, 이러한 주의 환기의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이곳 다락방에서 한가히 앉아서 말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적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지금 급박한 하나님 사랑의 강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사 화목제물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고 실행하려는 예수님의 불타는 사랑이 멀리 떠나지도 않으시면서 제자들을 재촉하시며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는 기묘한 언사로 표현됩니다.  학자들은 자유롭게 상상하는 특권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이 자리만 약간 바꾼 다음 15장, 16장을 말씀하셨다고 하는가 하면, 다락방을 떠나 길을 가시면서 또는 일어서서 중요한 말씀을 선언하시듯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장소가 어떻고 자세가 어떠하든지 다락방 강화는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예수님의 불타는 사랑과 강렬한 의지로 계속됩니다.  먼저 1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13절) 나는 포도나무로서 가지인 너희로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나의 생명을 주노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오 다오(잠 30:15)하며 욕심을 부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기브롯 핫다아와(민 11:34) 탐욕의 무덤, 우상숭배자의 죽음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분 우리 주님은 순수무구하게 주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고전 15:45에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a living being)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자에게 생명을 주사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만세의 성도를 당신의 가지로 삼으셨습니다.  이 진리를 전제로 해서 제자들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8, 2).

   예수님은 믿는 자의 생명이시요 구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뿐인 인생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십니다.  죄뿐인 인생에게 용서와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사랑이 없는 자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슬픔은 변해서 기쁨이 됩니다.  어둠은 가고 빛이 옵니다.  울음은 사라지고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이 없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거듭납니다.  예수님은 또한 믿는 자의 지도자요 선생이십니다.  김대중 선생이 아니라 주 예수가 우리의 선생이십니다.  제자는 그 선생을 본받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공자가 공자된 것은 그의 제자들 때문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빛나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고 빛을 주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엇이든 받아서 누립니다.  열매 맺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독특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서 그 생명을 전달하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열매를 연결 짓는 역할, 이것이 신자의 독특한 역할이요 교회의 임무입니다.  포도나무가 가지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 없이 어제도 오늘도 열매를 맺지 아니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리요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신자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신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것을 이 세상에 증언하고 전달하는 신자가 됩시다.  복음 진리를 전합시다.  예수 사랑을 전합시다.  구제도 하고 선교도 합시다.  찬양도 하고 말씀교육도 합시다.  주일학교는 우리가 헌신해야 할 가장 큰 장소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소속국 사역팀의 해당 부서에 지원해 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열매 맺는 가지가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더 많이 맺도록 깨끗하게 해 주시는 은총을 입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1910-1997)는 깨끗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산 장기려 박사님에게서 깨끗함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줌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깨끗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 많은 열매들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아름드리 맺혀 있고 우리는 그 그늘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지 된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삶이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주십시오.  남을 부하게 하십시오.  성경이 약속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나니(행 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구제하십시오.  나누어 주십시오.  성경이 보증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1)”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열매 맺는 신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분의 가지입니다.  우리의 스승 예수님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나누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주고 허비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가난은 이미 영적으로 극복되어 버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또한 성령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떠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떠남이 너희에게 더 좋은 것은 내가 떠나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이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요 내게 들은 말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16:7,13-15)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으로써 우리에게 오시되 예수님보다 훨씬 자유롭게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이웃이 되어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 위해 기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탄식하시고 근심하시는 이상 우리가 평안을 놓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이 안위하시고 보증하시는 이상 우리가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이웃이 되신 것처럼 너희들은 사람으로서 네 이웃에게 가장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눅 10장에 영생을 얻기 위해 질문한 한 율법사에게 예수께서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시며 그 실천에 대하여 되물으셨지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일렀습니다. “너희도 이같이 하라”  이 세상을 조금 살아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강도 만난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서, 환경에서, 경제에서, 질병 때문에 강도를 만납니다.  영적으로는 죄와 사탄 때문에 도둑맞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물 같이 녹았고 실날 같이 가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을 누가 치료하겠습니까?  영적으로는 하나님만이 치료하십니다.  인간적으로는 성령의 하부구조인 신자를 통해서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다(고후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전달하는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보금자리를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하늘의 행복을 소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신자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칼빈의 해석처럼 ‘존재하실 뿐 아니라 나를 향해 현재 임하여 계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합니까?  그 대답은 예수님이 15, 16장에서 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주기 위하여 떠나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더 많이 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곳을 떠납니다.  둘째,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 떠나야 합니다.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는 강도 만난 이웃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위로와 평안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을 떠납니다.  

   우리 교회에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습니다.  문화공간이 있고 참신한 말씀 교육의 시스템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대망하여 왔습니다.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날 가난하고 무력한 가운데서도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기도 하고 심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기뻐하시고 신뢰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더 큰 역사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송도제일교회여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흥분이 채 가시지 않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머지 않는 장래에 주님께서 홀연히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겠지요. “존 매케인, 일어나라 이 세상을 떠나자!”  우리는 그런 종말적인 주의 음성이 발해지기 전에 주님과 함께 더 많이 산책했으면 합니다.  제자의 길을 걷고 성령의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주님과 함께 일어납시다.  이 세상에 영생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강도 만난 자의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가장 좋으신 우리들의 이웃인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함께 일어섭시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표현할까요? “Move, move! 처져 있지 말고, 변명하지만 말고 살아 움직이세요. 여러분의 존재와 삶이 복음이 되게 하세요. 작은 예수로 살기 위해 일어나세요”  여러분, 복잡하게 사유하지 마십시오.  내 존재도 삶도 작은 복음이 되면 족합니다.  풍성한 추수의 가을을 향해, 2018년 설립 55주년의 더 높은 사도화의 길을 가기 위해 우리 모두 기꺼이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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