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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②
로마서 12:9-21

   사랑은 가장 큰 은사입니다.  사랑은 가장 높은 영적 자원입니다.  우리 교회는 고린도 교회처럼 하나님의 은사에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사랑의 수준을 높여가야 할 순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교회는 집단적 인격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집단적 인격이 개인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연속적으로 수행해냅니다.  빌 4:8-9에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송도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금년에는 사랑의 수준을 높여서 영적 품격이 있는 교회, 영적 기품이 있는 성도가 됩시다.  교회 안에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나라의 권위가 무너지고 세상에 실망을 주고 세상에 버림을 받는 맛 잃은 소금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도의 품위를 잃어버리고 성도의 이름만 가진 형식적인 신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사랑에 의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삶을 삶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거짓된 태도를 취한다면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제일 먼저 사랑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없는 용서와 끝없는 존중의 품속에 품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십니까?  한마디로 우리를 아들 같이 대우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아들 같이 대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비난과 야단은 여름날 가랑비처럼 잠시 지나가지만, 축복의 소낙비,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은 언제나 영속적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 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는 형제들을 한없이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비로소 사랑한다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이웃을 위해 열심히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11절에 열심이란 말은 성령의 열심이란 뜻입니다.  또 주를 섬기라고 했을 때 섬기라는 말은 종노릇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뜨거움으로 형제를 위해 종노릇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일은 기도와 함께 고된 일을 수행함으로써 성취됩니다.  이때의 일은 봉사를 뜻하는데 봉사란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생각하고 그들의 수준에서 그 요구들을 채워주는 것을 포함합니다.  위대한 성도는 그 형제자매를 위해 기꺼이 노예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오늘은 사랑의 실천, 그 다음 부분의 계속되는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12절 상반절에 사랑한다는 것은 환난 가운데 참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3장에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라고 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더 구체적입니다.  환난 중에 참는 데 어떻게 참는가? 그 과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인내는 무작정 중압 가운데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핍박과 고난이 마침내 선을 이룰 줄 알고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참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역경이 마침내 선을 이룰 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입니다(계 13:10).  믿음은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봅니다.  믿음은 그 환난 가운데서 결과 될 선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그 역경을 참고 견딥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신앙을 분명하게 표명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랑하면 끝까지 참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일생에 대해 일체 오래 참으십니다.  딤전 1:16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되매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지난 죄를 다 간과해 버리십니다.  세상 끝에 우리 구원을 위해 나타나셨고, 또 우리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오래 참아 주시지 아니하시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의 잘못에 대해 그때그때 진노하신다면 구원 얻을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진노 가운데서 인자 베푸시기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주의 온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크게 하십니다(시 18:35).  주의 길이 참으심이 마침내 우리의 구원이 됩니다(롬 3:25).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일체 참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끝까지 견디십니다.  그 사랑과 인내의 결과로 우리가 변화합니다.  성장합니다.  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인내의 결과와 그 미래를 바라보시고 즐거워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1-3).  어차피 인생은 참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참는 자가 복이 있다(약 1:12) 예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약 5:7)”고 강조했습니다.  참으십시오.  사랑을 가지고 참으십시오.  그러면 얼마 후에 ‘정말 잘 참았구나’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망 가운데 참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찬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를 부릅시다.  2절,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는 구절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12절 하반절에 사랑한다는 것은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시를 나눕니다.  기도가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복으로 임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가령 내세를 마련할 능력이 없다고 가정합시다.  그래도 마음껏 사랑하고 눈물 흘리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합니까?  오늘 본문은 형제간의 사랑이란 관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 마련이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곧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누구를 위해 꾸준히 마음을 쏟으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인 사랑, 작은 사랑의 유희에 들뜨다가 허망하게 사라진 사랑의 편린을 안고 쓸쓸해 하는지 모릅니다.  현대인의 불행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여 자신을 던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를 사랑하여 자신을 던질 마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에서 임직 받고 임명받을 때 우리는 온 교회 앞에서 찬송하며 서원하지 않았습니까?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 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찬 208장 3절)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 잊지 못할 곳 은혜의 보좌 주의 전(찬 209장 4절)”  그런데 여러분이 눈물로 기도해야 할 백성은 있는데 여러분이 앉아있어야 할 기도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은 웬 까닭입니까?  

   눈물로 기도하며 성령의 은혜로 봉사할 우리들이 기껏해야 인정적인 작은 가슴으로 토끼처럼 뛰어다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내 머리, 내 작은 계산으로 봉사하려고 하니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 때문은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의 모든 섬김에 꼭 기도의 자리를 두시라고 권고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면 우리의 작은 가슴은 주님의 큰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가 주님의 크신 지혜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인내하는 사람이 되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교회에는 내가 기도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부름 받고 직분을 받은 교회에는 언제나 주님이 지정하시는 기도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기도의 자리를 다시 찾으십시오.  내가 있어야 할 기도의 자리를 다시 확보하십시오.  기도할 때 저는, 나를 사랑하는 이의 기도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를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주님과의 사랑이고 형제자매와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부모형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던 그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거기서 여러분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의 빚을 되갚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와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 조용히 그대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와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셋째, 13절에 사랑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추상적으로 사랑의 봉사를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주님께라면 온갖 정성을 다하겠지만 정작 주님이 보여야지요?  그런 의문과 불평에 대해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중 작은 자 가운데 있도다. 결핍한 자, 가난한 자, 나그네 된 자, 그들 곁에 내가 있도다. 너희 중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장).  사랑한다는 것은 결핍 중에 있는 자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집사와 감독의 자격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나그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준다는 것이 쉽습니까?  얼마나 귀찮고 신경 쓰입니까?  열 가지 잘하다가도 한 가지만 잘못돼도 그만 전체가 물거품이 되는 것 처럼 여겨지는, 정말 속상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본문은 “성도의 쓸 것, 성도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를 거절하지 말라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일에 동참하라 그런 교제에는 절대로 빠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20년 전 우리 교회 건축헌금 작정 내용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가난한 성도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새 신자의 참여가 돋보였습니다.  마귀는 헌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교회의 쓸 것을 찾아서 공급합니다.  

   또 본문은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여기 힘쓰라는 말은 박해하다, 각박하게 따른다는 뜻입니다.  손 대접을 억지로 하거나 불평하면서 하지 말고 혹 대접하는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며 하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베푸는 친절은 서로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듭니까?  정성을 다해 베푸는 친절은 또 얼마나 살맛나게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긍휼을 베푼 사람들의 도움은 곧 내게 한 것이요, 심판 날에 하나도 흐리지 않고 다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대속적 죽음은 자발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대접하셨음으로 오늘날 온 세계교회 성도로부터 영원무궁한 사랑과 찬미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랑은 대접하되 양선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사서 황금률을 실천하여 황금률의 복(마 7:12)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참된 소망 가운데서 즐거움으로 내일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과 상황에서 참으십시오.  여러분의 참음이 마침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고 상급이 될 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것은 힘써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새벽에, 밤늦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눅 22:44) 기도하셨습니다.  그 많은 기도와 큰 사랑이 구원의 행동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남모르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였습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기도하십시오.  기도로써 여러분의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부모님과 신앙의 선진들께 빚진 사랑을 기도로써 되갚으십시오.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접대하는 것입니다.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은 그의 저서 ‘예언자’중에서 이렇게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사랑이 너희를 손짓하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할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너희를 품거든
그에게 자신을 온통 내 맡겨라
비록 그 날개깃 속에 숨은 칼이
너희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그리고 사랑이 너희에게 말할 땐
그를 믿으라
비록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 듯
사랑의 목소리가 너희의 꿈을 흩뜨려 놓을지라도

   사랑한다는 것은 소망 가운데 참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힘써 기도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정성껏 먼저 대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 있는 신앙생활, 사랑이 있는 교회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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