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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④
로마서 12:9-21

   고전 13:13에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제일이란 말은 가장 큰 개념이란 뜻입니다.  더욱 크고, 더욱 나은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셋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성을 끼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소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영생과 구원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사랑의 줄기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뿌리와 줄기만 가지고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역시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만 믿음과 소망이 형제들에게 전해집니다.  사랑의 은사를 통해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항상 있는 믿음보다 크고, 항상 있는 소망보다 큽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믿음이 역사합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소망이 인내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믿음만, 소망만’이라고 할 것 같으면 개인적인 신앙만 강조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 사랑이 플러스되어야 우리의 신앙이 공동체적이 됩니다.  우리의 개인적 성격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적 성격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고전 13장을 보세요. “너희 믿음이 산을 옮길 만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에 사랑을 공급하세요.  여러분의 소망에도 사랑을 부과하세요.  사랑이 우리들의 믿음과 소망을 온전하고 찬란하게 만들고 생동감 있게 장식해 줍니다.  바울 사도가 골 3:14에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오늘은 어떻게 현실적으로 나와 형제들을 온전하게 맬 수 있는가?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그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첫째, 사랑한다는 것은 본문 14절의 말씀처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여기 ‘할 수 있거든’이란 조건절이 달린 것은 화목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선 모든 일을 입체적으로 완전하게 판단하시지만 평면 선상에서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판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상대적인 우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유 1:9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여 주께서 너늘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면서 천사장 미가엘도 마귀를 판결하는 권세를 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일임하였는데, 하물며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세(롬 13:1)를 함부로 무시한 죄가 얼마나 큰 가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화평하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셨지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과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화평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자기의 몸으로 허무셨습니다.  우리의 불의와 부정과 거짓 등 모든 죄악을 주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과 심판과 저주를 십자가 위에 다 퍼부었습니다.  평화는 예수님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체결된 평화의 언약 때문에 온 것입니다.  평화는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은혜의 성령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임한 것입니다.  평화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누군가 십자가를 짊으로 다가옵니다.  평화는 내가 책임지고 내가 희생함으로 옵니다.  평화의 제물 없이 평화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을 위한 평화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영속적인 평화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신 은혜와 절대적인 평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안전과 생명의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죄는 사해지고 의는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사랑의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복음의 빅뱅으로 태어난 복음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잠정적인 원수 관계가 세상 끝 날까지 발생할 것이다. 너희는 그 원수진 사이에서 평화의 제물이 되어라. 먼저 네 자신이 기쁘게 평화를 위한 산 제물로 살아라”  우리는 이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도무지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평화를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동체마다 평화가 깨어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평화를 위해 죽어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선동하는 사람은 많은데 평화를 위해 침묵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있어도 평화를 위해 묵묵히 짐을 지고 가는 평화의 제물로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평화의 왕은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시길 원합니다.  평화의 왕께서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시려고 “내가 쓰겠다”고 의지하실 때 여러분은 선뜻 자신을 평화의 제물로 내 놓으십시오.  평화의 왕이 타고 들어오실 나귀가 되십시오.  만약 어느 공동체에 평화가 있다면 그곳에 평화의 주님이 임하시도록 자신을 내놓은 희생의 제물, 평화의 나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귀는 말이 없습니다.  변명이 없습니다.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없습니다.  피곤하다는 발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축과 같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당신의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평화를 위해 평화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현숙한 부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화를 위해 언제나 남편에게 져 주었습니다. 남편에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하고 따지고 싸우고 다투어서 얻는 것보다 평화가 좋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평화를 위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아내는 진정으로 그 남편을 사랑한 것입니다.

   둘째, 사랑한다는 것은 선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사랑의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은 악인데 그 악을 어떻게 선으로 계속 갚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본문 20절은 그것이 사랑의 의무요 기쁨이라고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참 어렵습니다.  정말 빈틈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원수를 사랑하라 저주하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말씀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랑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원수가 필요한 그것을 주어라 주되 억누른 증오와 진노의 감정을 갖지 말고 친절하게 선대하여라”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처럼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한마디로 사랑의 원자탄이 터집니다.  “나는 악을 행하는데 상대방은 내게 선을 행한다”는 행사를 원수의 편에서 생각해 보세요.  원수가 스스로 부끄럼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의 머리맡에 숯불이 달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숯불은 피해자가 베푼 예기치 않았던 친절에 대하여 가해자가 느끼는 수치의 상징으로 가해자의 심정에 불붙는 번민을 표현한 것입니다.  해를 당한 사람의 선으로 악을 갚는 행위는 이러한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 효과는 제일 먼저 우리 자신에게서 발생했었습니다.  우리의 범죄로 말미암아 당신의 영광에 손상을 입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외아들을 희생시키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 악을 선으로 갚으신 주님의 사랑은 정녕 숯불이었습니다.  그 숯불이 도화선이 되어 우리 가슴 속에 사랑의 원자탄이 터졌습니다.  우리는 그날로부터 사랑의 원자병을 앓게 되었고, 우리 악을 당신의 선으로 정복해 버리신 사랑의 권능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의 허리춤이 당신의 손길에 사로잡혀 이끌리는 사랑의 포로가 되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도가 되고, 사랑하지 않으면 죄스러워지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주님의 뜨거운 숯불의 사랑 때문에 손양원 목사는 자기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화란의 Corrie Ten Boom 여사는 자기를 마음대로 능욕한 나치 장교를 용서했던 것입니다.

   이 숯불은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피치 못할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종말론적인 사랑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 곧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이요 또 하나는 그 사랑을 증언하는 보혜사 성령의 사랑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사랑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요, 그 복음 메시지를 사랑의 과정으로 적용시키시는 은혜의 성령을 현저히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복음이 그 머리에 숯불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이 크면 그 배신에 대한 형벌도 큽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형벌은 사랑의 배신에 대한 형벌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의 종말론적인 사건과 그 과정에 대한 배신과 불신에는 얼마나 큰 형벌이 임하겠습니까?  이 사랑에 대한 배신에는 용서가 없고 다시 사할 제사가 없습니다.  영영한 심판의 맹렬한 불만 있을 뿐입니다(히 10:26-31).  

   그러나 우리가 선으로 악이 갚아지는 것을 볼 때에는 아직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선으로 악을 갚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선을 악으로 끝까지 짓누른다면 19절의 말씀이 마침내 실현됩니다.  교회의 상부구조이신 성령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부구조인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선으로 악을 갚을 때 사랑의 원자탄이 폭발합니다.  그 종말론적인 사랑 앞에 회개할 때 그는 그분의 사랑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반대로 그 종말론적인 사랑을 거부할 때 그는 지옥의 멸망에 떨어집니다.  뜨거운 숯불의 진노 아래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한다는 것은 선이 악을 이기고 만다는 사랑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고전 13:7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무엇보다도 선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는 것입니다.  선의 궁극적인 승리, 최고선인 사랑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으십시오.  내가 아프고, 속고, 손해  보아도 우리는 끝까지 선으로 일관하고, 사랑으로 일관합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을 믿고 삽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십시오.  어떤 종류의 악이라도 모두 버리십시오.  첫째, 평화를 위해 손해도 보시고 희생도 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 속에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평화의 꽃이 피고 행복의 향기가 만발할 것입니다.

   둘째, 원수가 여러분에게 끼친 악을 선으로 되갚으십시오.  그래서 두 종류의 원자탄이 터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하십시오.  우리가 선으로 악을 갚을 때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가슴 속에 사랑의 원자탄이 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기하신 자들의 머리에는 진노의 원자탄이 터질 것입니다.  사랑은 역시 불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행복의 불이요, 배신자에게는 형벌의 불입니다.  셋째, 사랑의 궁극적 승리를 믿으십시오.  선이 마침내 악을 이기고 만다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공포를 이깁니다.  친절이 무정을 이기고 관용이 다툼을 이깁니다.  평화가 불화를 이기고, 온유가 격정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깁니다.  사랑의 승리를 믿는 자는 마침내 노래할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세상 모든 것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히 사랑은 살리라 사랑은 영원히 죽지 않네”  2018년에는 우리 모두 정말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신자가 됩시다.  사랑받기 원하기만 하던 저와 여러분이 이제는 사랑의 실천이란 관점을 가지고 사랑을 행사하는 성숙한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를 더욱 명랑하게 만듭시다.  사랑이 넘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힘차게 증언합시다.

prayer
   오 주님, ‘사랑이 꽃피는 양지’에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이 꽃피는 양지’를 건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이 꽃피는 양지’의 일원이 되게 하소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하소서.  평화의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을 태우고 행진하는 평화의 나귀가 되게 하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사랑의 승리를 믿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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